친구라는 여행 메이트
대학시절, 처음 타는 비행기에서 잔뜩 긴장한 채 진행한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많은 여행들을 지속하고 있다. 여건이 될 때면,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떠난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가족들과 그리고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다양한 여행 메이트 중 나에게 새로운 여행을 선사해 주는 존재가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친구라는 여행 메이트를 꼽을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의 여행 스타일을 고수하는 여행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호스텔보다는 호텔을 선호하고, 안전과 편안함을 가장 중요시한다. 마치 패키지처럼 유명한 관광지는 꼭 들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문 밖을 나서고, 밤 문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지인과의 스몰토크는 어색하고 어려워 피한다. 여행하는 장소가 바뀌고 여행지에서 행하는 액티비티가 바뀔지라도 나의 여행 스타일은 변화가 없다.
가족과의 여행 역시 스타일의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혼자 하는 여행보다는 변수가 많고 의견이 많은 편이다. 내가 여행 중 잘 가지 않는 유형의 식당에 가게 되고, 내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계획에 없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은 패턴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보통 가족여행의 세세한 계획을 내가 세우기 때문이다. 인터넷 정보 서치에 어려운 부모님 뿐만 아니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에 관심이 없는 동생도 내 계획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통 가족들과 갈 때는 내가 원하는 숙소, 액티비티가 반영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면 내가 기존에 하던 여행과 다른 새로운 여행을 맛보곤 한다. 특히 나와 비슷하게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녔으며,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친구와 여행을 떠날 때는 더 그렇다. 20대 초반에는 친구와의 여행이 새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새롭다고 느끼기에는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았고, 나 혼자 여행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동생과 해외여행을 가봤지만 그건 취향을 발견하기에는 너무 어벙벙한 여행이었다. 그 이후 20대 초반의 나의 대부분 여행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 아직 여행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나는 보통 친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행을 즐겼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건 내 친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10여 년 만에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메이트는 내 고등학교 친구였다. 이 친구와는 국내로는 짧게 여행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길게 해외로 여행을 떠난 적은 처음이다. 친구는 나 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였고, 최근 유럽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큰 부분은 의견이 일치했으나, 여행의 사소한 스타일은 달랐다.
서로 다른 부분을 좋아하는 우리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친구와 입국장에서 따로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지 않는가. 입국장에서 따로 들어오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여행을 잘 준비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우리는 여행 준비 중 혹은 여행 중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의견을 정확하게 서로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괜히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말 못 하고 있다가 나중에 서운함을 토로하지 말자는 것이다. 서로 여행 스타일이 다르기에 서로 원하는 것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가야지 하고 결심했다. 아마 내 친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어쩌면 내 기존 여행스타일과 같으면서 다른 새로운 여행이었다.
가장 먼저 숙박시설을 결정할 때부터 기존과 달랐다. 물론 호텔 비용이 비싼 유럽 여행이었기에 친구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기존과 달랐겠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봤다. 호텔을 선호하는 나와 다르게 친구는 에어비앤비를 선호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에 비해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조리가 가능하며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여행지에서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는 컵라면도 잘 먹지 않고, 무조건 레스토랑에서 사 먹는 나와는 대조적이다.
해외까지 가서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에 묵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을 차려 먹는 것, 별거 아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여행이었다. 친구와 이번 여행을 할 때 보통 한 끼는 사 먹고 한 끼는 해먹고를 반복했다. 여행 전 마트에서 한식 재료들을 사서 여행에 가지고 갔다. 이것이 유용할까에 관해 의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밥을 먹는 거는 꽤나 든든한 것이었고, 현지 마트 구경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런 에어비앤비 숙소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다른 숙박 형태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 에어비앤비를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호스트와의 대화가 두려웠고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여행이 아니었다면 아마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맛집에 집착하는 편이다. 맛에 대해 별로 예민하지도 않으면서 그 지역 유명하다는 곳, 특히나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들을 찾아가는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맛집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 보았다. 대신에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해 봤다. 이건 친구와 의견이 딱 맞는 부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긴 웨이팅에 너무 지쳐버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웨이팅 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도 한몫했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호텔 레스토랑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 작은 호텔의 가족적인 분위기의 레스토랑부터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까지 이용해 봤다. 작은 호텔에서는 호텔 주인이 직접 돌아다니며 가벼운 스몰토킹을 하는 분위기를 즐겼으며, 고급 호텔에서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겼다.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용기가 부족해서 혼자 갔다면 즐겨보지 못했을 것이다.
패키지가 아닌 이상 모든 해외여행은 뚜벅이 었던 나에게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것 또한 새로운 여행이었다. 장롱면허인 나에게 독박 운전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친구의 의견은 처음에는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다. 미안한 감정도 있고 말이다. 확실히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운전을 하면 더 가볼 수 있는 곳이 많고, 더 현지인이 사는 곳으로 들어갈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뚜벅이는 절대 가지 못할 곳에 숙소를 잡고 동양인은 아무도 없는 호텔에 묵고 하는 경험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여행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친구 혼자 운전해서 미안한 감정도 들긴 했지만 말이다.
새로운 여행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하는 스타일이 은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새롭다 했지만 소소한 부분에서였다. 그럼에도 새롭다 느낀 것은 가장 최근에 했던 여행 중에 가장 자극적이었다고 느꼈기에 그렇다. 나쁜 자극 말고, 정말 새로운 자극 말이다. 새로운 배움과 같은 자극이었다. 다음에는 나 혼자 여행에서도 이렇게 해봐야지, 다음에 이 친구와 여행 가면 이렇게 해봐야지 하는 것들 말이다. 가장 자주 보는 친구 중 하나인데 해외여행을 할 때는 이렇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여행에서는 하지 못할 도전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친구라는 여행메이트가 즐거움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