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여행 다녀오면 하는 다짐
여행을 다녀오면 블로그에 여행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녀온 동선부터 힘들었던 감정, 좋았던 감정까지 남기고 나면 여행이 오래 기억되고 지속되는 느낌이다. 최근 여행기를 찬찬히 읽어보면 여행기의 마지막 다짐이 반복되곤 한다.
“내가 이번에는 진짜 운전 배운다”
일단 나는 면허가 있다. 하지만 오래된 장롱면허라는 게 문제이. 운전면허도 겨우 딴 나에게, 운전을 하는 것은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아직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은 대중교통으로 하는 경우에 편할 때가 더 많다. 주말 약속 역시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늦지도 않고, 술도 마실 수 있다. 평상시에 필요가 없으니 운전을 하겠다는 다짐은 언제나 다짐으로 끝난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공허한 다짐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운전이 가장 생각나는 순간을 꼽는다면, 국내 여행을 하는 순간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의 국내 여행은 대부분 뚜벅이인 경우가 많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선택지가 많아지겠지만, 혼자 가는 경우 혹은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끼리 갈 경우에는 선택지가 뚜벅이라는 선택지만 남아있게 된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도시, 예를 들어 서울이나 부산 같은 곳을 여행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대중교통으로 여행 다니기 어려운 도시들이 많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강릉만 가도 그렇다.
일전에 강릉으로 나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KTX를 타고 강릉에 도착해, 시내의 맛집에 들리고, 야무지게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가 바다부채길도 걷고, 강릉 중앙시장에서 회도 떠 왔다. 이제 숙소로만 가면 되는데... 숙소로 가는 버스가 도저히 오지 않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놨던 버스는 막상 내가 움직이려 하니 오지 않았다. 몇 분 기다리면 된다는 기약도 없이, ‘도착예정정보 없음’만 표시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겨우 버스 정보가 지도에 표시되었다. 차로 오면 금방 도착할 숙소를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만 도시를 벗어 나도, 버스가 제 때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이럴 때 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뚜벅이로 다닌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동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원하는 장소로 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에 잠깐 멈춰서 구경하는 것도 어렵다. 그나마 버스가 많이 다니는 주요 관광지로만 경로를 잡을 수밖에 없다. 버스로 가기 어려운 곳을 일부러 여행을 다니면, 가는 것도 어렵지만 다시 돌아올 때도 문제가 생기 곤 한다.
뚜벅이로 어렵다던 제주도 나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뚜벅이로는 분명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안가를 가는 버스가 많아서 택시랑 적당히 섞어가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한데라는 마음에, 이전에 가고 싶었던 카페를 가보기로 결심했다. 후기들에는 차가 없으면 가기 어렵다고 되어 있지만, 여행의 기간이 늘어날수록 괜히 자신감만 커졌다. 네이버지도로 길을 찾아 버스를 한번 갈아타서 무사히 카페에 도착했다. 중간 기다리는 시간도 10분밖에 되지 않으니 이 정도면 뚜벅이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심지어 블로그에 뚜벅이도 갈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겨야지 하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카페에서 숙소 방향으로 갈 때였다. 도저히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다. 카페에 앉아서 계속해서 네이버지도를 새로고침 하면서 알아봐도, ‘도착예정정보 없음’만 표시되면서 해안가로 내려가는 버스가 한대도 오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택시도 잡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때부터 카페를 즐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음 일정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한참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지도만 새로고침 하는 중에 겨우 버스가 10분 뒤에 온다는 알림을 보자마자 카페에서 뛰쳐나가 다행히 버스를 타고 해안가 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 이후로 뚜벅이로 다닐 때는 웬만하면 내려올 때를 고려해서 이동하곤 한다.
뚜벅이로 여행 갈 때 말고도 운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엄마랑 단 둘이 하는 국내여행에서이다. 국내여행은 앞서 말했듯,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선택지가 많다. 엄마랑 나는 여행을 자주 같이 다니는 파트너인데, 문제는 운전은 엄마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 여행을 다닐 때는 둘이서 뚜벅이로 다니거나 엄마 혼자서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기에,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 장소를 잡거나 그 지역에 도착해서 렌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 혼자서 운전을 하게 하는게 여간 마음 쓰이고 미안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 여행이 끝난 후 여행기록의 마지막은 항상
“엄마 미안, 내가 운전 진짜 배운다.”였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여행 중에는 이번에는 진짜 운전 배워야지 하고 늘 결심하지만,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이 결심은 흐지부지 되곤 한다. 일상에서는 아직 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인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운전을 배워야겠지. 언제까지 공허한 결심으로 끝낼 수는 없잖아. 운전을 배워서, 목적지도 없이 훌쩍 떠나서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 잠깐 서서 구경하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내가 진짜 운전 배운다! (올해 도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