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May 06. 2024

평생의 숙제 영어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

 학창 시절 약한 과목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수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나는 수학은 좋아했지만, 싫어하고 못하는 과목이 있었으니 그건 영어였다. 그 어떤 과목보다 오랫동안 배워오고 학원도 열심히 다녔지만, 영어는 나에게 어렵고 힘든 과목이었다. 문법, 단어도 어렵지만 역시나 가장 어려운 것은 회화가 아닐까. 왜 말을 하려고 하면 쉬운 단어도 생각이 안 나는지. 분명 아는 단어인데 입에 담기가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수학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졸업하면 관련 업무자가 아니면 다시는 만날 일이 별로 없지만, 영어는 평생의 숙제처럼 나를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영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결국 대화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 이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는 기능이다. 고급 어휘 수준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간단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수준의 영어가 필요하다. 이렇게 필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가장 매달려 공부하고 있는 거 같은데, 영어는 왜 늘지 않을까?


 첫 해외여행에서 처음으로 바디랭귀지의 효용에 대해 알아버렸다. 유럽에 가기 전 언어가 통하지 못해 고생할 것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특히나 영국으로 들어가는 일정인데, 당시에 영국은 입국수속이 철저했기에 여기서 영어를 못 해 들어가지 못할 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입국수속에서는 전형적인 대화만 할 수 있으면 큰 문제가 없었기에 미리 준비한 답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긴장해서 여행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체류 기간을 답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들어온 지하철역, 이제 숙소까지 잘 가는 미션이 남았다. 영어를 잘 못해서 현지인에게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동생과 둘이서 끙끙거리며 겨우 표를 끊고 숙소가 있는 역으로 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에 한인 민박에 머물렀기에, 그 이후의 일정은 좀 더 수월하게 정보를 얻어가며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하면서, 영어를 유창하게 쓸 필요가 없었다. 식당이나 매장에서는 간단한 단어와 바디랭귀지 만으로 물건을 구매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영어 실력이 낮다고 계속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초등학생 때부터 최소 6년 이상 영어를 배웠으니 외국인이 배려해서 천천히 하는 언어는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다만 대답하기 어려웠을 뿐) 영어가 아예 없는 메뉴판을 만나다 보면 오히려 메뉴판에 있는 영어가 반갑게 다가왔다. 간단한 단어만 알아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생 보다 못한 언어 수준으로도 충분히 물건을 사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데 문제가 없었다. 이때 ‘디스 플리즈’라는 마법의 단어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처음으로 갔다 온 여행에서 괜한 자신감만 늘어났다.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매장에서 물건을 사고 돌아다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 가서 살 것도 아니고 관광지만 주로 돌아다니는데, 뭐 긴 영어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어 몰라도 해외여행 가는데 아무 문제없어라는 생각만 깊게 자리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간단한 언어와 바디랭귀지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여행은 불가능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지하철에서 만난 독일 할머니에게 제대로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땡큐 라고 했을 뿐이다. 길을 찾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그저 둘이서 끙끙거리면서 길을 헤매다 결국 그 목적지를 포기했다. 숫기가 없어서 영어로 외국인에게 질문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 친구도 사귄다고 하는데 나는 친구는커녕 제대로 된 긴 대화도 무리였다. 


 그래, 단순히 해외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다.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가 맞다. 바디랭귀지 만으로도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 딱 그 수준 까지는 가능하다. 서비스와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사는 수준 말이다. 게다가 그분들은 나에게 물건을 파는 입장이기에 더 친절하게 천천히 말을 걸어준다. 내가 카드를 내는데 아무 문제가 없도록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나라의 사람들이 혹은 그 지역에 여행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여행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여행을 끝내게 된다. 이런 여행에는 현지인과의 에피소드가 없다. 그저 내가 소비하고 즐긴 기억만 남을 뿐이다. 물론 그런 여행이 즐겁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현지인과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여행을 해보고 싶을 뿐이다.


 최근 여행은 번역어플로 인해 더 의사소통이 쉬워지고 있다. 이런 어플들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내가 어렵게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까지 든다. 하지만 대화 중 어플을 쓰고 있는 자신을 보면 좀 폼이 안 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까지 영어를 몇 년을 배웠는데, 4년제 대학까지 나와 놓고 간단한 대화도 어플에 의존하는 게 멋있지는 않다.


 이번에 나는 친구와의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영어권 나라에 여행을 가는 것이다. 최근에 여행을 갔던 일본은 대부분의 식당 및 공공장소에 한국어 안내가 있을 만큼 영어는커녕 일본어도 필요 없는 국가였다. 그동안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 모든 의사소통은 친구들에게 의존했다. 나와 다르게 여행지에서 간단한 문장 정도는 원활하게 구사하는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이번에도 같은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기 전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내가 지금부터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고급진 영어 문장을 구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리고 깊은 대화를 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디스 플리즈’보다는 좀 더 긴 문장을 구사할 수 있지는 않을까?


 참 영어는 평생의 숙제가 맞는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대 여행 그리고  30대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