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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Oct 02. 2017

웃어버리곤 사막으로 돌아가자


프랑스어 공부는 잘 돼가?     

내가 묻자 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아챌 수 없는 빛깔의 눈으로 나를 봤다.     

프랑스어 잘 해서 어디다 써?     

나는 당황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던 건 너였고, 그러니까 그걸 배워서 어디다 쓸지도 네가 알고 있을 줄 알았다.     

프랑스 말. 그걸 해서 뭘 할까.     

너는 다시 중얼거리며 눈으로는, 아직 표정을 결정하지 못한 내 얼굴 구석구석의 달싹거림을 쫓았다. 그제서 네 눈의 색을 알 것도 같았다. 화가 난 것 같은 눈빛, 아니 그러면서도 일말의 뜻 있는 이야기를 찾으려는 눈빛. 나는 그런 공허하고 간절한 마음에 선뜻 다가서는 법을 지금도 모른다. 어, 너 이전에 그랬잖아. 파리에 있는 카페들, 그 ‘드 플로르’랑 ‘레 되 마고’ 거기 꼭 가고 싶다고. 거기서 알베르 카뮈나 생텍쥐 베리처럼 멋있게 주문 해보려면 프랑스어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장황하고 실없는, 이미 누군가가 몇 번쯤 네게 했을 법한 그렇고 그런 대답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네가 다시 따져 물을까 겁먹었지만, 너는 그저 힘없이 수긍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 끄덕, 하고는 커피잔에 꽂힌 빨대를 빨았다. 나는 미안했다. 너에게 어떤 싱싱한 소망도 심어주지 못했구나.               

알고 있다. 우리 갚아야 하는 빚이 너무 많다. 우리를 낳거나 키운 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 우리의 지난 젊음에게, 아직 오지 않은 보다 덜 젊은 젊음에게, 늙음에게. 그것들 갚을 일을 잊지 못하는 동안 하루가 저무는데 우리 어떻게 ‘지금 살고픈 삶 살며 행복하자’는 말에 온전히 웃을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그것을 목표 삼아 그 곳까지를 견디라는 말 참 많이 들어왔는데. 견디라는 말 너무 쉽게 들어서 못 견디겠다는 말은 날마다 어려웠다. 그 이야기 한 어른들 목적지에 닿아본 적 있어 그런 말 했을까. 그 어른들 꼭 지금 우리같았으면서 어른이라 아이 앞에서 앓지 못하고 괜히 모질게 군 건 아닐까. 나는 너를 위로하는 대신 같이 울적해버리기로 했다.        


  

목적지는 허상이야.     

내가 입을 떼자 네가 희미하게 웃었다.     

맞아, 그걸 누가 봤다니.     

내가 다시 맞장구쳤다.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도달 직전까지는 알 수 있는 게 뭣도 없잖아. 이정표도 없는데. 우리보고 어쩌라고.     

맞아. 오아시스야. 우리는 사막이고. 그걸 무작정 믿으라니.     

아무데로나 갈래?     

내가 버럭 묻자 너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내가 이어 말했다.     

아무데로나 가서, 여기가 내 목적지다 이것들아, 해버리자. 목표를 모른다고 하면 바보 취급을 하는 그 바보천치들한테 침을 뱉어줄 거야. 난 목표만 모르지만 너넨 인생 아무 것도 몰라!     

너는 약간 소리 내 웃었다.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는 다시, 만져본 적도 마셔본 적도 없는 오아시스를 손가락으로 그려보며 대부분의 밤을 사막에서 맞을 것이다. 바보천치들에게 침을 뱉지도 못 할 거고, 아무 데로나 가지도 못 할 거다. 우리 역시 인생 그다지 알지 못 하고, 이제 막 짐작할 뿐이다. 인생은 너무 어렵구나, 살아도 살아도 그럴 테지. 그냥 우리, 프랑스 말을 하고 글을 쓰다가 때때로 만나서 이렇게 웃어버리곤 이정표 없는 각자의 사막으로 돌아가자. 지금 행복하니, 하고 묻지는 말고 그냥 서로의 사막에서 묻어온 모래를 한 자리에 털고 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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