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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Oct 13. 2017

목적지는 하나의 깃발이 아니고


무엇도 너를 목적지로 실어가려 하지 않을 때, 아스팔트와 흙길을 걷는 일만으로도 해가 질 때, 너는 그 '목적지'라는 것을 의심해야만 했을 거다. 네가 언제부터 그 곳에 가기로 생각했는지, 왜 그랬는지, 거기에 가면 정말 너의 '목적'이 있기나 한 건지. 어쩌면 그 모든 게 오기라든가 망상이라든가 하는 건 아닐지.

정돈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너는 참 자주 깨고 또 체했을 거다.

결론은 나지 않았고, 너는 그저 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거나 땅에 시선을 처박고 숨을 쉬듯 걸었다. 살아있는 까닭으로 그냥 걸었다.          



그런 나날들이 얼마나 이어졌는지 기억이나 나니?

길었지, 많이 길었다. 그 가운데 너는 알아차렸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달은 때때로 모양을 바꾸고, 어여쁜 것들이 시들고,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모아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쳐드는 일들에 대해. 목적지라는 것은 하나의 깃발이 아니고, 걷는 길에서 본 꽃이며 달이며 어여쁘거나 죽은 듯 보였던 것들로 네가 이어 그린 세계, 그러니까 그냥 네가 네 삶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들판에 누워 별을 세던 너는 불현듯 울어버렸지. 그래. 무엇이 감히 너를 싣고 가겠니, 너만이 너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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