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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Oct 14. 2017

슬픈 아이가 슬픔에게 매질하지 않기를


네가 지은 너의 의미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위해 기도해. 종교는 없지만 우주를 믿어. 우리가 저 은하와도 무관하지 않은 존재라는 믿음이 나의 신앙이야.     

우리는 선택한 적 없이 이 세상에 나타났고,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잖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들은 결국 삶을 벗어나있지 못하고, 그래서 그 모든 게 어떨 땐 강요처럼 느껴져.          

담배를 태울 때 길게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나 길 가장자리를 걸을 때의 터벅이는 발걸음에서, 네가 어떤 날들엔 울적하기도 하다는 걸 짐작해. 종종 하늘 어느 한 점에 눈길을 멈출 때면, 그 너머의 무엇을 보고 있을까 속으로 물어. 아프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네가 너의 성을 고르지 못한 대신 누구도 쥐어줄 수 없는 너의 의미를 제 힘으로 가졌다는 걸 알아. 그걸로는 안 될까. 네가 너를 이루었는데, 그러니까 오늘까지 이렇게 삶을 잃지 않았고 내일까지도 그럴 수 있는데. 그 사실로는 어떻게 좀 담배를 덜 피울 수는 없을까. 걸음마다 덜컥거리는 것들이 좀 부드러워질 수 없을까.          

어떤 답을 하든 오늘밤은 그게 맞아. 넌 이미 너를 이루고 있고 나는 다만 기도해. 네 안에 깃든 모든 것이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슬픈 아이가 슬픔에게 매질하지 않기를. 꿈꾸는 아이가 꿈을 학대하지 않기를. 아픈 아이가 상처를 쥐어뜯지 않기를. 잠못드는 아이가 밤을 미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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