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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Feb 24. 2024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도서관에 들려 빌려온 시선집이다.

카페에 가서 시집을 읽고, 당신들은 소설을 읽고, 함께 영화를 봤다.


곽재구 님이 엮은 시를 보고 마음이 울렁인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울렁거림이 술렁거림으로 바뀌었고, 당신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계에 대하여, 사랑의 정의에 대하여, 연인과 인연에 대하여. 당신은 사랑을 그리움이라 하였고, 또 다른 당신은 인연이란 거미줄의 교점에 맺힌 이슬과 같다 하였다. 


나에게, 당신에게, 웡카같은 존재는 누구인가?

나를 완전히 바뀌게하고, 잠시라도 내가 행복한 인간임을 일깨워주는 이가 가슴속에 한명씩은 있는지.

나를 방심하게하고, 사는게 슬픈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이가 당신들 곁에는 있는지.


For a Moment/ 출처, 누군가의 유튜브


다채로운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 한 편에도 마음이 기울고, OST 한 곡에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는 건, 한없이 우물을 퍼 내는 것과 같아서 때로는 우물이 마르기도 하고, 우물이 마름에 스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이 시집을 읽었으며, 감동하였고,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접어놓은 귀퉁이에 공감해 본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티모시 살라메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의 음색에, 표정에 또 한 번 반하게 되고, 한없이 그 가사에 잠식된다.

그리고 바란다. 내가 더 나은사람으로 성장하기를. 흔들리지 않기를. 홀로 설 수 있기를.


# 첫사랑


소년이 내 목소매를 잡고 물고기를 넣었다

내 가슴이 두 마리 하얀 송어가 되었다

세 마리 고기떼를 따라

푸른 물살을 헤엄쳐 갔다  - 진은영



# 민들레꽃 필 무렵


그 남자한테서

가을 햇빛에 펄럭이는 삶은 기저귀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에 코를 박고 오랜 시간 나는 행복했습니다. -김소영-



# 봄밤


면봉은 한 봉지에 백개


부어오른 목 안으로 늙은 의사는

누런 불빛을 갖다 대었다


그렇지

새들은 한 마리가 죽으면 

떨고만 있지


있지

오리기구를 타고 혼자 떠 있는 저수지


저녁은 오래된 약통 속의

먼지를 바라보네

약봉지에 적힌 누런 이름과 나이들

내 이름도 있고 당신 이름도 있네

시계를 벗으면

손목의 흰 테두리처럼.


후두둑 불려 가는 것들로 봄비 번진다


밤새, 

남은 새

몸에서 밀려오는 요의.   - 김경주



# 촛불


나의 눈물을 위로한다고

말하지 말라

나의 삶은 눈물 흘리는 데 있다

너희의 무릎을 꿇리는 데 있다

십자고상과 만다라 곁에

청순한 모습으로 서 있다고 좋아하지 말라

눈물 흘리지 않는 삶과 무릎 꿇지 못하는 삶을

오래 사는 삶이라고 부러워하지 말라

작아지지 않는 삶을 박수치지 말라

나는 커갈수록 작아져야 하고

나는 아름다워질수록 눈물이 많아야 하고

나는 높아질수록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김귀례



# 내 살던 옛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나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노래할 수 있을까

붙임으로 엉킨 햇빛의 무게를 

견디는,

때로는 고요 속에 눈과 코를 만들어

아래로 내려보내서는 서러운 허공중들도

감싸안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클레멘타인을 부르던 시간들을 아코디언처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가

계절이 지칠 때 

꽃피는 육신으로 다시 허밍 하는

그 집 지붕의 단란한 처마들


나는 걸음에 젖어서 

그 갸륵함에 대해서    -장석남



#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그리움을 견디고 사랑을 참아

보고 싶은 마음 병이 된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어찌 그리움이겠느냐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을 때는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우리 사랑은 몇천 년을 참아왔느냐

참다가 병이 되고

사랑하다가 죽어버린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느냐

사랑의 독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죽음이 아니겠느냐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말하지 마라

사랑은 살아지는 것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머지않아 그리움의 때가 오리라

사랑의 날들이 오리라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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