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그 후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을 읽고, 우리로 하여금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욕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소설이나 소설적 글쓰기로 재구성할 때 얻을 수 있는 문학적 가치가 무엇인가?"
교수님께서 내 주신 과제이다.
마음은 벅차 이미 알고 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틈만 나면 고민을 하였다. 당장 급한 숙제가 아님에도, 어서 빨리 머리가 명쾌해지길 바랐다. 당장이라도 저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넘실대는 무언가가 증발될 것 같았다.
개인의 역사와 지난 트라우마가 일기가 아닌 소설이 되었을 때 우리의 글은 어떠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지, D의 하다 못한 이야기를 필사하며 정리해 나가 보려 한다.
# 바로 거기에, 나는 정말로 있다. 비탄을, 기대를, 혹은 마치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내게 언어를 뺴앗아가기라도 하는 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그때와 똑같이 느끼며.
그 방은 단어들로 샅샅이 묘사하는 것 말고는 존재하게 할 다른 방법이 내게는 없는, 저항하는 실재다.
# 이런 것들을 읽으며 나는 감동을 받는다. 1958년 가을, 생로맹 장터의 아우성 속에서 이제르의 대로를 홀로 절망에 잠겨 걷던 열여덟 살 여자아이의 마음이 나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구원받기까지 한 것처럼, 절망을 느끼던 그 시기에 이 여성들이- 당시에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ㅡ 자기처럼 버려진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위로하고,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것이 지닌 고유성과 고독을 산산조각 내러 상상력이 찾아올 때 느끼는 이 회고적 위안의 기이한 달콤함.
# 우리는 다른 이들의 존재속에, 그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심지어 행동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이 남자와 보낸 두 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나는 그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불균형.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
# 사실 이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문학밖에 없다. 무언가를 재현하는 문학과 찾아가는 문학.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념하려고 그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 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서사가 추구하는 지배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는 언제나 이런 점들이 빠져있다. 경험하는 순간 경험한 것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 모든 문장, 모든 단언에 구멍을 뚫어야만 하는 현재의 불투명함, 자신을 칼리라고 부르는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길이 험한 시골도로를 행군하는 여자아이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명명할 수 도없다. 그녀는 그저 먹을 뿐이다.
# 내 인생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내가 여기고 있는 존재들, (많은 경우 그들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아니다) 중 하나다.
# 나는 파스칼이 그랬던 것처럼 내 방에 조용히 틀어박혀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저녁 5시경, 유리창 너머로 노을이 지는 걸 바라볼 때야. 추위가 밖의 모든 것을 돌처럼 얼어붙게 하고 나는 네 시간을 연달아 공부한 참이지. 어두운 시립도서서관도 마음에 들어 내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니체의 문장이 있어. 진실로 인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 글쓰기의 가능성이 많아지는 건, 우리가 경험하는 그 순간, 경험하는 것의 의미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 내가 쓴 것의 기억은 벌써 지워지고 있다. 나는 이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책을 쓰면서 뒤쫓고 있던 것마저도 녹아 없어졌다. 나는 종이더미 속에서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의도처럼 보이는 메모를 발견해 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닌 무시무시한 현실성과 몇 년이 흐른 후 그 벌어진 일이 띠게 될 기묘한 비현실성 사이의 심연을 탐색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