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앞에선 모든것이 무색해진다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정정하시고 짱짱하셨던 나의 할머니는 나의 유아기를 꽉채워 주셨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현재 친정엄마 나이보다 젊으셨던것같다. 할머니라고 불리우기 젊은나이다.
손자 여섯을 거침없이 맡아주셨다. 맏이인 나는 사촌들이 하나 둘씩 태어나는걸 고스란히 지켜봤다.
하나같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할머니덕분에 함께 생활할 수 있음에 기뻤다.
여전사 같던 우리 할머니도 세월을 정통으로 맞으셨다. 급격히 몸이 노쇠해 지셨고
마지막길은 중환자실에서 맞으셨다. 아무것도 못드시고 그저 호스에 의존하신채
겨우 내뱉으시는 말은 '목말라'와 '배고파'이셨다.
반찬통이 동생네를 돌다, 엄마네를 돌다, 우리집에왔는데 공교롭게 우리 할머니의 반찬통이었다.
플라스틱 통에 매직으로 커다랗게 "스토로베리" "부르크리"라고 써져있는
우리 할머니 반찬통.
설거지해도 안지워질 용기에 어찌나 박박 쓰셨던지
그글자를 한참을 만져보았다.
스토로베리와 부르크리를 따로 보관하셨던 늙은 할머니의 손길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왜 딸기가 아니라 스토로베리였는지는 따로 여쭈어보아야겠다. 대답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딸기와 브로콜리였으면 짠하지 않았을 마음이, 스토로와 부르크리에 무너졌다.
할머니.
나는 잘지내요. 할머니가 그랬듯이 나도 40대를 통과하고 있어. 할머니의 노년기가 올줄 몰랐듯이 나도 나의 노년기가 과연 올까 가끔 궁금해.
나는 할머니, 할머니처럼 병원에서느 지내고 싶지 않아. 건강하고 명석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 할머니처럼 떠나버리면 남은사람들이 너무 가슴이 아프거든. 그때 차라리 물을 드릴걸. 밥이라도 한끼 제대로 드리고 보내드릴걸. 다들 후회해.
그래서 할머니 나는 나이먹는것이 두려워. 젊은이들에게 소외 당하는 것이, 뒤쳐지는것이, 총명함을 잃는것이. 총명함을 잃는것도 자각하지 못하는것이 두려워. 아무리 모든것들이 쇠퇴해도 한사람의 역사는 소중한법인데. 그것조차 묵살되잖아.
할머니. 나는 마흔이 넘으면 모든것에 평안해 질줄 알았어. 모든것을 통찰할수 있는 작은 씨앗이라도 발현될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할머니.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휘청거려 휩쓸리고 넘어져.
이런이야기를 할머니와 나누고싶었는데. 내새끼 왔냐며 주름지게 환하게 웃던 할머니의 얼굴이 생생해
할머니, 당신은 지금 어디에있을까?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