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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May 12. 2024

11일의 장례


일렁이는 심장을 두세 개쯤 삼켜버린 내 몸뚱이를

나는 등에 메쳐 엎고 저 먼 곳으로 떠난다.

가슴에 글이 차오르는 소리는 끝이 없어서 

중간중간 토악질을 해대도 가슴은 출렁인다.

가슴에는 출렁이는 물그릇을 떠안고

등에는 심장 세 개를 둘러메고

물그릇과 심장을 묻으러 40개의 고개를 넘어선다

한 손으로는 가슴의 물그릇을 수평을 맞추고, 한 손으로는 등에 나를 짊어지고

그렇게 40개의 고개를 겨우 넘는다

하나하나 넘으면 쉬울 줄 알았던 고개는

넘으면 넘을수록 장미덩굴로 뒤엉켜있어

허연 종아리엔 장미가시의 자국이 선연하다

출렁이는 물그릇은 장미덤불에 쏟아붓고

심장이 세 개인 나를 장례 하며

환멸과 안도의 숨 가쁜 삽질을 멈춘다

장지에서 떠나는 택시에 올라타니 아버지가 백미러로 날 바라보신다.

생채기가 난 피에 젖은 종아리와

흙이, 고름이 뒤엉킨 손바닥을

가만히 숨기고 값을 치렀다

염습도 하지 않은 나를 40고개 너머에 두고 온 나는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어른이 되었다

섣부른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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