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Jun 14. 2024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

디샤 필리아 소설


# 당신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위험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p.214)


백수린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우유, 피, 열'에 이은 흑인여성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이다. '우유, 피, 열'이 그러했듯이 이 책 또한 강한 색채를 띠고 있다. (공교롭게 두권 다 표지 색이 붉다)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들과 대화하는 듯했고, 그 상황에 처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총 아홉 편의 단편소설로 엮여있는 이 책은 얼핏 보기에는 서로 각기 다른 주제(섹슈얼리티, 신앙의 허울, 퀴어리즘 등)로 구성된 듯하나, 커다란 흐름은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 복숭아코블러나, 소설 근저에 깔려있는 기독신앙, 그리고 억압과 폭력등이 그렇다.


혹자는 이 책의 전반적인 색채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동성애, 목사와의 외도, 유부남에게 건네는 불륜의 주의사항 등, 소재가 자극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아서라고 판단된다. 난 그렇고 말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어쩌면 그들이 보기엔 나의 삶 또한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다채로운 다양성을 비춘다는 점에서 난 이 소설이 좋았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은 조금 가슴속에 담아놓고, 인상적인 글귀를 남겨 놓으려 한다.


# 그 애의 '혼자'라는 말의 찌르는 아픔이 평소처럼 빨리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 네가, 여기 있어야 해, 네 전부가. 여기에.


# 추신, 할머니는 네가 임신했는지 알고 싶어 해.


# 나는 그가 일종의 흑인 산타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가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다른 어머니들의 복숭아 코블러를 맛보러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월요일이면 늘 나의 어머니의 코블러를 먹으러 돌아온다고 상상했다. 나는 가서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다. 어머니를 향한 이 새로운 느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 나는 적당한 우스개를 몰랐지만, 복숭아를 자르는 어머니의 두 손을 지켜보고, 몇 번을 젓는지 세어보고, 냄새로 오븐에서 코블러를 꺼내는 정확한 순간을 계산하는 걸 배운다면 - 어쩌면 나도 하느님을 기쁘게 할 코블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어머니를 기쁘게 할지도 몰랐다.


# 나는 그 복숭아가 되고 싶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뤄지기를 갈망했다. 그럴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걸 원했다. 나 자신의 손으로 그렇게 멋진 음식을 만드는 것.


# 어머니가 나에게로 걸어왔다. 아주 가까워서 숨에서 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 똑똑한 게 있고 살아봐서 똑똑한 게 있지.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살아봐서 똑똑하다면 절대 나처럼 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 그 순간, 나는 욕망이 넘치면 거기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욕망이 우리를 저 아래 바닥까지 끌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 우리는 모두에게 어두운 면이 있다. 당신이 나와 함께 당신의 어두운 면을 탐사해 볼 것을 권한다. 나는 당신을 심판하거나 모욕하지 않으며, 당신의 모든 비밀이 나에게 오면 안전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당신의 에고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기는 싫지만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당신에게 감정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감정이 생긴다면 걱정하지 마라. 그 순간은 지나갈 것이다.


#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매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인 것처럼 당신을 대할 것이다. 당신 같은 남자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그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샤워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당신 물건을 챙겨라.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반지를 다시 껴라. 선헤엄을 쳐 마른땅으로 다시 돌아가라. 


매거진의 이전글 오십 미터 - 허연 시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