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경사가 진 언덕,
그새 풀이 성큼 자라 있다
비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가득한 그곳에 앉아
널 기다렸다
바람이 지나가자
풀들이 '스스스' 울며 파동을 만든다
안개인지 비인지, 그것에 얼굴이 다 축축해지도록
우린 네가 오길 기다린다. '스스스'와 함께
너의 우산이 보이자 '우리'가 널 환대한다
짐짓 나는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성큼성큼은 콩닥콩닥이 되었다
난잡한 축제는 시작되었고,
알 수 없는 얼굴들은 킬킬댔다.
'킬킬'들을 헤집고 '성큼성큼'에게 가려했다
연무를 뚫고, 그들 사이로 기다시피 하여
간신히 다가간 나를 보고
성큼성큼은 킬킬 웃는다
연무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내 얼굴은 범벅이다. 눈물은 선택사항이었다
그때였다.
언덕의 맨 꼭대기를 장식할
마지막 오너먼트가 도착한 순간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순결한 모든 것들의
타락 그리고 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