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Jun 27. 2024

은애(恩愛)


무르팍 종이 위의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다 지우다

글자는 없어진 지 오래인데

종이까지 지우는 나는,

지우개 똥인지 종이의 살점인지

파악도 못하는 나는


그 말이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길 바랐다


글씨를 지우다 종이를 지우다 

허벅지까지 벅벅 지워도

아프지 않았다

지워진다면, 사라진다면.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집착, 회한, 갈증, 내 자신에 대한 부재, 공동의

또 다른 명사라는 것을

나르시시즘에 근거하는 자기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無形의 어리석은 울렁임을 최초로 명명한

어리석은 당신 또한

나에겐 無形이다


종이의 살점처럼, 지우개의 파편처럼

콧바람에 사라질 것들



매거진의 이전글 처형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