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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28. 2024

4화. 사소한 '보글보글'



순두부찌개가 간당간당하다. 계란을 두 개를 넣고 싶은데 딱 하나를 더 넣으면 와르르 넘칠 모양새다. 계란을 하나만 넣기로 한다. 계란 하나를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냄비가 끓어 넘친다. 국물은, '보글' 할 때마다 치지직 하며 냄비를 타고 가스불 받침대에 자국을 남긴다. 흰색 가스레인지에 찌개 자국이 남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보글 한번 할 때마다 행주를 들고 주위를 빙빙 돈다. '보글'이 '보글보글'이 된다. 불을 줄이고 싶진 않다. '보글보글'을 쫓아다니며 불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화구를 닦는다. 일부러 위험한 행동을 선택하는 내 자신이 조금 경멸스럽다. 탄 냄새가 난다. 행주의 마른 부분에 불이 붙었다. 젖은 부분은 불속에 들어가도 말짱한데 젖지 않은 곳은 금세 재가 된다. 너도 사람처럼 조금은 슬퍼야 살아남는구나,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며 그만 가스불을 끈다.


한바탕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행주를 빨고 탁탁 털다 보니 화가 조금은 사그라든다. 퇴근길에 받았던 민원전화가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전부터 지쳐있었다.) 굳이 퇴근시간을 골라서 전화한 걸까? 내가 약 오르는 시점을 다들 알고 있나? 편협한 사고가 계속되자 사소한 것들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깜빡이를 넣지 않고 우회전하는 차들에게 경적을 울렸고, 서류를 깜박하고 제때 제출하지 못하는 몇 명의 네가 미웠다. 나를 보자마자 저녁 찬이 뭐냐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에게 밥을 퍼주는데 밥그릇이 무거웠다. 이 그릇은 깨지지도 않아. 십수 년을 함께한 식기세트는 정말 이 하나가 나간 것이 없다. 그런 사소한 '보글보글'들이 타버린 행주를 빨고 나니 사그라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었다 내쉬었다를 몇 번 더 반복했다. 훨씬 좋아졌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고 위크를 마감하였으며 위켄드를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겨우겨우 산 중턱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다가, '지난 일주일도 금세 지나갔네', 혼잣말을 했다. 불길의 타버린 행주가 되지 않기 위해 조금 감상에 젖는다. 쥐어짜도 물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말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젖은 행주가 되는 순간은 꼭 혼자 있기로. 그대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로 울지 않기로. 마른행주가 되어 타버릴지언정, 내 심장이 네 곁에서 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고독을 선택하는 일 말이다.

나의 작은 냄비의 보글보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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