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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07. 2024

5화. 우리를 위해

언니, 언니가 그랬었지.

너무 급하게 운전하다 보니 주변사람들이 모두 다쳐있었다고. 닿을 듯 말 듯한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무작정 액셀레이터만 밟다 보니, 모두가 부상을 입었다고. 그래서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바보 같았던 나는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왜 애초에 목적지를 멀리 잡았을까, 왜 갑자기 그 사람들에게 언니는 사과를 해야 했을까, 내가 볼 때엔 멋지게 운전 중이었는데 말이야. 심지어 이런 나에게까지 사과를 했었잖아. 난 잘 몰랐어. 왜 나까지 사과를 받아야 할까.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애써왔어. 아무래도 나보다 언니는 더 나은사람이니까 응당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했거든. 큰 교통사고 이후로 함구하는 언니를,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된 언니를, 모든 따뜻한 단어를 잃어버린, 초점 없는 언니의 눈빛을 이해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인생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평하지 말라고 했던가.

슬프게도,

슬프게도.

나의 가속에도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더라고.

난 바보같이 그 사실을 외면해 왔어. 난 언니보다 이기적인가 봐. 닿을 수 없는 그곳에 꼭 가고 싶었거든.

 

그때의 언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었는데. 생각해 보면 언니는 이미 어른이었던 거야.

이제야 언니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꼴이라니. 난 그동안 왜 언니를 원망하는 사람들 편에 섰던 걸까. 결국은 나도 같은 흐름에 편승했는데.


그때 언니가 몰던 자동차를 몰다 보니, 자동차 전면에 부딪히는 장마의 빗소리마저 슬프게 들려. 마치 내가 치고 다닌 어린 고라니들의 핏자국을 씻겨주는 세차장의 빗물 같아.


이제 언니도 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그때 왜 언니의 편에 서지 못했는지를, 사실은 나도 뒤에서 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왜 지금 고라니의 핏자국을 장맛비로 씻어내려 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서 지금 언니의 핏자국은 어때?

장마가, 봄비가, 겨울의 함박눈이 그것들을 좀 가려주었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 차가 되었는지 난 그게 궁금해.

나의 가속페달을 이제 밟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가속페달이 없는 브레이크만 존재하는 자동차를 몰아야 할지.


오늘은 언니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언니의 실어증은 결국 필수불가결한 결과였는지. 언니의 선택으로 다수의 사람이 행복해졌는지. 다수가 행복하다면 엑셀레이터를 밟아야 할 이유는 없는지에 대해서.


비가 그치면 연락할게

장마에 모든 내 핏자국이 씻겨 내려간다면 말이야.




https://www.youtube.com/watch?v=AZc2xWhjq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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