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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14. 2024

7화. 당신과 나의 궤도에 대하여

나는 명왕성이다.

궤도도 혼자 기울어져있고, 모양도 구형이 아니며, 주변의 천체들도 중력장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해 

함께 부유하는 명왕성.


그러다 문득 주 궤도의 교점에서 수성, 금성, 목성, 화성들을 만난다.

여김 없이 그들은 제 자리이다. 저기 혜성이 있는 곳까지 방황을 하고 온 나를 제외하고는.




오랜만의 대가족 모임, 그리고 나


할아버지의 생신잔치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녀들의 자손까지 4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부여된 역할과 맡은 바를 다한다. 나는 손녀로, 딸로, 엄마로 남편은 사위로, 아빠로. 오랜만에 본 조카들은 또 한 뼘 자라 있다. 오랜만에 본 동생네 부부도 유쾌하긴 마찬가지였다.

왠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익숙해서 슬프지만, 그래도 원래 내 자리여야 하는 곳. 그렇게 현실 자각타임을 겪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거의 꼴딱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 슬프지 않다고 허허허 웃으시는 삼촌의 주름진 이마 때문인지, 90을 넘기신 할아버지의 유약한 모습 때문인지, 사위역할을 만점 맞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이유는 모호했다. 아니야 분명한 건 나의 이기심에 대한 반성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된 동생도 나와 함께 40대를 맞이한다. 정정하던 이모부와 숙모도 이제 그랜마 그랜파라고 불린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이뻤던 00이, 눈가에 눈주름도 잡힌다며 삼촌이 걸걸 웃으신다. 그렇게 옛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독려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것이 난 이유 없이 슬펐다. 아무도 모르게 슬픔을 감추고 돌아왔다.


나는 원래 명왕성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명왕성이 되길 바라는 행성인 것일까. 아니면 행성이 되고 싶은 명왕성일까?

그렇게 밤을 새웠다. 철없는 사십한살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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