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64의 방학 이브 이야기.
죄송하다면 다된다.
마음대로 말을 밖으로 뱉어놓고 죄송하다면 되는 것이다.
열네 살의 그들은 그래도 된다. 의무교육을 받는 그들은 아직 미성년자이며 미성숙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흔하나의 나도 용서해야만 한다. 직업을 이리 선택한 것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의무교육을 훌륭히 이수한 '어른'이자 먼저 태어난 先生이기 때문이다.
오늘 다수 앞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41의 나는 14에게 타격을 받고 가슴이 아프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가 성별이 달랐어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내가 좀 더 엄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내 정신이 딴 곳에 가있다는 반증인가? 14들은 내 안에도 작은 아이가 살고 있다는 생각까진 못했을 것이다. 금세 죄송하다고 반성하는 그들은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들은 14니까.
하지만 감정은 감정대로 흐르는지라, 결론적으로 난 슬펐다.
흔히들 말하는 '이 나이 먹고'에 감정이 몰입되었으며, 생각 없는 그들의 말투에 분노했다. 하필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고 난 후였다. 순간 그 작은 월급에 이 모든 감정노동의 비용이 들어있는지 계산해 보았다.
어쩔 수 없이 32명의 14세들을 끌고 일 년을 버텨야 한다는 절망감이 날 무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난 어른이었다. 초임도 아닌 17년 차 선배교사인데 말이다. 눈물이라니 맙소사.
17년간 담임을 하며 이렇게 차가워 진적이 있는지 되짚어보았다. 14들이 건네준 애정에 대한 배신감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무력함과 어쩔 수 없음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짜지도 뜨겁지도 않은 눈물이었다.
과연 나는 이 자리에서 한 해 한 해를 버티고 있는 것인가, 진실로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나는, 뜨거운 눈물이 아닌 식어버린 눈물을 흘리는 나는, 이들을 이끌어 나갈 자격이 있는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까? 이미 나는 아궁이에 볏짚을 잔뜩 쑤셔 넣어놓고 불이 붙길 기다리고 있진 않았는가?
작은 학교였어도, 난 혼자 자동차에 들어가 울었을까?
문득 그리운 것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눈을 감았다.
현실의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미지근한 눈물은 금세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이제 페르소나 하나를 꺼내 뒤집어쓰고 출근할 차례이다.
담담한 척, 용서는 이미 진즉에 한 척, 너희들이 던진 돌은 내겐 뻥튀기 튀밥과도 같은 타격감이라고.
난 어른이니까. 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니까. 난 그래야 하니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