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6일, 정말 겨울이 왔다.
귀가 에이는 듯한 추위가 오지 않아 내심 섭섭하던 참이었다. 그간, 겨울이라고 하기엔 너무 따뜻했다.
어제는, 칼바람을 맞으며 프리퀀시를 교환하러 다녀왔다.
퇴근길이었는데 스타벅스로 이동하는 동안 볼이 꽤나 시렸다. '이제야 겨울이네' 씩 웃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는 올해를 정리하는 글을 써도 되겠구나 짐작했다.
매우 싱겁게 들리겠지만, 올 한 해는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버티는 삶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방향키를 전환했기 때문이다.
버텨왔던 삶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일정표를 더 촘촘히 채웠고, 할 일을 앞당겨 처리했다.
2.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3. 불편한 말은 삼켰다. 그 말이 관계를 흔들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쪽을 내가 맡으면, 상황은 일단 유지되니까.
4. 괜찮다고 설명하는 데 능숙해졌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일이고, 지금 포기하면 더 손해라는 논리를 먼저 세웠다. 설득은 늘 성공했고, 그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5. 지금만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고, 상황이 정리되면 나도 따라 나아질 거라고.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버틴다는 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삶의 감도를 낮추는 일이었다. 살아 있었지만, 내 전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안에서 응어리 된 감정은 때론 난폭운전, 기분변동폭의 극심한 양극화, 운동강박등으로 표출됐고, 난 이유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올해 다시 한 살이 되었다. 42살의 몸을 지닌 1살.
어느 계기로 트라우마를 직면하게 되었고, 외부 기관에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뤄왔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밀도 있게 내 안의 운영체계가 교체되었다. 이것은 내가 일부러 의도한 것도 아니고, 의식해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동안 외면했던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서술은 무척 담담 하지만 이것을 기록하면서도 마음이 벅차다.
이제는 같은 일을 겪어도 몸이 먼저 긴장하지 않는다.
버티는 법이 아니라, 다루는 법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닥친 상황을 해석하기 전에, 나를 먼저 확인한다.
예전에는 감정이 명령을 내렸고, 지금은 내가 판단한다.
문제는 줄지 않았지만 대응 순서는 바뀌었다.
이제는 경보가 울리기 전에, 차단기가 한 번 더 작동한다.
예전엔 즉시 실행되던 반응들이, 이제는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는 안전하며, 나는 나를 먼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깨달았다는 점이다.
겨울이 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위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세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는 쪽에 서 있지 않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은 남아 있고,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해가 짧아지고, 저녁은 빠르게 찾아온다. 어둠은 예전보다 일찍 내려앉지만, 이제는 그것을 위험 신호로 오해하지 않는다.
불을 켜야 할 때를 알고 있고, 속도를 줄여도 괜찮다는 것도 안다.
겨울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단지 계절답게, 천천히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살아낸다는 감각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 겨울은 아마 오래 기억될 것이다.
처음으로, 나를 해치지 않은 채 맞이한 겨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