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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23. 2023

딸에 대하여,-죽음과 가난에 대한 고찰

가난, 삶, 죽음, 늙어감,

나의내면과의 색과 가장 가까운 , 그래서 읽기 불편하면서도 위로받은 책이다.

요즘 읽는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서사시로 이루어진 소설이 아닌 삶의 한 단면을 자세히 관찰하여 묘사한 하이퍼리얼리즘 장르이다.



매일밤 비슷한 꿈을 꾼다.

길을 잃는다. 같은 계단을 맴돈다. 수업에 늦는 교사가되어 학교에 가려고 하지만 자꾸만 같은길이 나온다. 고3이되어 발을 동동구르며 수학문제집을 찾아 헤맨다, 엄마 아빠가 등장한다. 쳇바퀴에 갖힌다. 벗어나고싶었던 가난을 등에 지고 버스를 탄다. 항상 같은번호의 버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친다. 좁은방으로 이사를해서 공부를 한다. 쫓겨난다. 다시 방을 얻었는데 같은방이다. 어떤날은 또다시 고3이다. 이번엔 교실을 잊는다. 어지럽다. 수업을하다가 쓰러진다. 일어나려고하는데 어떤게 꿈이고 어떤게 현실인지 헷갈린다. 일어난다. 몇발자국 걷다가 또 쓰러진다. 옷에 잉크가 뭍었다. 잉크가 흰옷에 번진다. 또 쓰러진다. 어지럽다.

엄마는 항상 누워계신다. 아빠는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계신다. 집안이 체리색이다. 온통 체리색인 집으로 이사를 반복한다.


꿈에서 깨면 항상 생각한다.

치매에 걸리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어지럽고, 선명하지않고, 모든게 뿌옇고, 헛돌고, 명료하고싶은 정신을 붙들려면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매일밤 치매체험중이구나.


그런와중에 이책을 읽었다.

요양보호사인 주인공, 그리고 그의 딸 그린과 그녀의 동거자 레인, 죽어가는 젠, 허울뿐인 교수아내.

책을 읽고나자 집을 치우고 싶어졌다. 그들의 그림자가 우리집을 덮친것처럼.

나는 아직 40대인데, 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난 건강한 자식들이있는데.

자꾸만 내면에선 늙어감이 두렵고, 꿈에선 직업을 찾아 전전 긍긍하며, 자식이 꿈에나오기보다는 엄마아빠가 나온다. 나는 누굴까


욕실에 한글로 뚜벅뚜벅 써있는 옷갖종류의 한국산 샴푸와 바디워시, 욕실청소제가 셋트가 아닌채로 이것저것 가득히 쌓여있는게 가난의 상징이라는 초등학교때 친구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지금 우리집 욕실은 한글이없다. 빨지않은 옷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식탁의 영양제의 콜라보레이션이 싫다. 그래서 난 굴러다니는 거의 모든것을 버린다.


김혜진님의 장편소설의 그녀의 집은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집이다.

욕실에 정돈되지않은 모든 싸구려삼푸린스가 가득하고, 사타구니에 욕창이있는 할머니가 죽음을 기다리고, 그녀는 실직을하고, 딸은 성소수자가 되어 매일 고군분투하는. 집에 들어가려면 시멘트가 죽죽 발려진 불안정한 계단을 밟고 좁은길로 내려가 삐걱되는 스텐현관을 열어야 하는집.


그래서 이책은 내 안에있는 잠들어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난 그것들이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겁고 회색빛이지만 어떡하겠는가 그게 바로 '나'인것을.


# 면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떄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 변두리 좁은 골목에 썩은 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주인을 닮아 관절이 닳고 뼈가 삭고 서서히 앞으로 꼬꾸라지는 이층짜리 주책. 하루가 다르게 의기양양해지는 세상의 모든 집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집.


# 청년들은 젠이 여기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하긴 어떤의미에서 그들이 만나러 온 젠은 이곳에 없다. 그러면 여기있는 젠은 젠이 아닌가? 이들은 젠에게 벌을주러 온 것일까? 존경받아 마땅한 젊은 날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어졌는지, 지금 네 꼴이 어떤지 보라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는 걸까?


# 젠의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해진 살들이 앙상한 뼈에 겨우 매달려있다. 덜렁거리는 살들을 치대며 비누칠을 한다. 젠의 다리가 덜덜 떨린다. 거품이 묻은 손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매만지고 시커먼 욕창 주변에 일어난 죽은 살들을 떼어낸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옥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 지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세요.


# 이렇게 있어 줘서 고맙구나, 나는 간신히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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