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게 되었나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던하게 행동하는 성인으로 자란다. 자신이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고유한 기질을 부정받으며 자란 아이는 예민함을 드러내는 것이 생존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오히려 그 반대인 무던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매우 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랬다,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늘 ‘원만한’ 학생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반에 한 명쯤 있는 ‘착한 애’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그 착함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우 고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 정도는 누구나 자라면서 겪는 고통이라고 유난 떨지 말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모범생 이미지를 쌓아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안정한 자아는 언젠가 한 번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었다.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내가 살아온 날을 돌아볼 수 있었고 그때 나는 내가 쌓아 올린 자아개념을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했다. 20년이 넘는 기간 쌓아 올린 자아 개념을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일은 한 인간이 재창조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빌려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나를 부정했고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길 바랐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제야 보이는 내 정신적 문제들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예민한 사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관련된 책과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남들보다 민감한 성향을 지니고 있고 동물도 비슷하다고 한다. 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내가 겪는 정서적 어려움이 설명 가능한 현상이라는 것이 매우 위로가 되었다. 실제로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질에 대한 중립적인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책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사랑’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민감한 사람은 자신의 기질에 대한 중립적인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민감성이 문화적으로 이상적인 기질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들처럼 행동하려고 하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비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은 실재하며 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당신 말고도 많은 데다가 대부분의 다른 종에도 존재함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감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가 민감한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전문적인 정보가 아니더라도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될 것이다. 용감하게 자신이 예민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공유해 준 사람들로부터 내가 받았던 것처럼 나도 미약한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앞으로 나는 민감한 사람임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 그 후로 생긴 변화, 민감함에 대한 책, 다양한 정보, 심리 상담 경험 등에 대한 나의 얘기를 올릴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래서 나도 치유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