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이 나를 돌보는 방법_명상
가끔 생각이 너무 과해서 생각에 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작은 겨자씨만 한 고민도 눈덩이 굴리듯 크게 키우는 것에 재능이 있는 나는 어떤 일이든 단순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늘 심각해진다. 이런 나에게 어떤 친구는 ‘그냥 생각의 스위치를 끄면 되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끄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나는 그저 알겠다는 말로 고민상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생각이 많은 것의 문제는 단순히 생각의 양이 많다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이 대부분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의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을 왜 하느냐고 안 하는 게 이득 아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제일 문제다.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과하게 대비를 하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나의 과한 대처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늘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아무튼 생각이 많은 것이 나에게 이득이 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생각의 굴레에 빠져 실제 놓인 상황을 왜곡해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쉽게 자기 비하에 빠지고 우울감에 허덕이는 나날이 지속되기도 했다. 나는 우울과 무기력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 헤맸고 우연히 명상을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명상을 접하게 된 것이 ‘마음보기’라는 어플이었다. 당시에 딱 숨쉬는 것 정도의 에너지만 남아 있었기에 운동이나 기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었다. 정말 딱 숨 쉴 정도의 에너지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명상은 호흡만 할 수 있으면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했던 명상은 들숨과 날숨의 호흡에 집중하며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이거 한다고 뭐 나아지는 게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꾸준히 한 달 동안 명상을 하면서 나는 분명한 변화를 느꼈다.
가장 많이 성장한 것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자동적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동적 생각은 ‘더 열심히 해야 돼.’,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가치 없는 존재야.‘,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돼.’ 같은 생각들이었다. 모두 하나 같이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었고 이미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버린 생각들이었다. 명상은 나의 비합리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자극과 반응 사이에 어떤 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꼭 어떤 자극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은 너무나도 확실한 나의 구원이었다.
명상을 알게 된 후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명상을 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명상을 경험해 보았고 일주일간 명상원에 가서 수련을 받은 적도 있다. 호흡 명상, 자애 명상, 산책 명상 등 다양한 명상을 하면서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지만 가장 큰 깨달음은 모든 생각과 감정은 ’나‘가 아니며 그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린 후에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 생각에 체해 무기력에 빠질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꾸준히 명상을 실천하고 있다.
물론 명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밉고, 더 잘했으면 좋겠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렵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나의 진정한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