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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19. 2016

맥주

목구멍을 타고 불꽃처럼 터지는.

"콸콸콸, 쏴아...치이...익"


경쾌한 맥주 소리. 냉장고에서 막 꺼낸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것도 좋지만, 투명한 유리컵에

맥주 거품이 차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경쾌한 탄산가스의 소리를 느끼는 것이 좀 더 좋다.


특히, 병맥주. '칭칭' 유리병이 잔에 부딪히며 황금빛 알코올을 쏟아낼 때의 드라마틱한 광경이란. '칭칭' 소리를 포기한다면 캔맥주의 운치도 무시할 수 없다. '똑' 하고 짧은 신음을 내며 좁은 수문을 여는 캔 뚜껑의 낭만은 캔맥주만의 것이므로. 어느 쪽이든 유리컵에 따르는 편이 나는 좀 더 좋다.


안주로는 뭐가 좋을까. 닭강정도 좋고 육포도 좋고 꼬치도 오케이. 새우깡만 먹어도 행복하다.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쾌감은 배변의 카타르시스와 맞먹는 것이다.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맥주는 그렇다.


어제는 상사에게 하루 종일 깨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직장인에게로, 오늘은 누군가의 실연을 달래려,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설레는 데이트 코스로. 시시각각 그 의미와 용도를 달리하며 가장 친근하게, 가장 친숙하고 쉬운 맛으로 인간의 감정을 녹이는 술.




여름엔 퇴근길 편의점에서 맥주 두어 캔을 사, 집으로 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놓는다. 곧장 욕실로 가 샤워를 한 후 다시 냉장고행. 30분 동안 얼음 방망이를 맞은 캔맥주의 피부는 본 사람만이 안다. 다이아몬드를 두른 듯 차갑게 빛나는 저 알루미늄의 자태. 음~. 손에 쥐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굳이 유리컵에 '콸콸콸' 부어 마시는 것은 소리의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단숨에 들이키기에 더 편하고 짜릿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캔이나 병의 입구는 쓰나미처럼 입안을 휘감는 파괴력이 없다. 그 정도의 저력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입 안에 가시처럼 군데군데 박혀있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모두 떠내려 보내기 위해서는 식도를 자극하는 불꽃같은 스파클링이 필요하고, 목구멍을 단숨에 잠식할 크고 거대한 파도가 필요하다.




늦은 저녁,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오늘은 무얼 떠내려 보낼까나.

편의점 가는 길의 산책로에는 벌써부터 삼삼오오 모여 가벼운 맥주 한 잔에 웃음을 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들은 오늘의 무엇을 떠내려 보내고 있을까나.


나도 얼른 맥주를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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