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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16. 2016

내숭

이제 그만 '안녕'하고 싶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좋았다. 심지어 피부까지 하얘서 아직 영글지도 않은 나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이였다.


점심시간. 급식 당번이었던 그 아이가 커다란 밥통 앞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반 아이들에게 밥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얼마만큼 줄까?" "더 많이?"


뭐 이런 얘기들이 밥통 앞에서 수시로 오고 갔다. 저만치 뒤에서, 그러니까 빈 급식판을 들고 아직 반찬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저만치에서부터 나는 그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두근두근.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 걸음마다 천근만근 두근 반 세근 반.


김치를 올리고 한 발짝, 나물을 올리고 한 발짝, 고기를 올리고 한 발짝. 아 이제 밥이구나. 국이 앞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좀 더 가라앉힐 수 있을 텐데.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조...조금만"

"어?"

"그니까 조금만 달라고"


그 아이가 밥 한 주걱을 퍼 내 급식판 위에 올렸다.


"아니, 덜어줘"

"어?

"조금만 더 덜어줘"

"이렇게 조금?"


이 정도의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 인생 최초의 내숭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에 돌아온 나는 양에 차지도 않는 밤톨만 한 밥 뭉치를 마하의 속도로 먹어치웠다. 그날은 내내 배가 고파 하굣길 문방구에 들러 쌀대롱 두 봉지와 10개에 10원 하는 콩과자 50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빈 껍데기뿐이었지만.


여자의 내숭이란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것을, 나는 이때 알았다.




대학교 3학년, 날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2살이 어렸다. 그 아이도 나도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 아이는 군대에 가야 했고 나는 곧 졸업반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시간이나 환경의 제약을 넘어설 만큼 좋아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때 그 아이와 나는 꽤 친밀한 교감을 나누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하다 여겼다.


그 아이가 잠결에 내 이름을 불렀다는 후배의 얘기, 어두운 밤마다 나를 집에 바래다주었던 다정함, 계단을 오를 때 넌지시 건네주었던 손은 매 순간 나를 설레게 했으니까.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때의 젊음과 그때의 감각이 지금 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어른이 되고 난 후의 내숭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좋아도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설레도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어른 여자가 된 나의 내숭이었다.


잠결에 내 이름을 불렀다는 후배의 얘기에는 콧방귀를 뀌었고, 어두운 밤마다 날 바래다주었던 그 아이에게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눙을 쳤다. 계단을 오를 때 넌지시 건네주었던 손 대신 그 아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입대하기 전 그 아이는 나에게 집주소와 좋아하는 꽃에 대해 물었다. 정작 내가 물어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도 입대하면 주소 알려줘. 편지 쓸게. 과자도 보내줄게." 이런 말이라도 했다면 뭐라도 달라졌을까. 이런 말조차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내숭.


입대 후, 그 아이와는 소식이 끊겼다.




스물일곱에 좋아하던 오빠는 경상도 사람이었는데 일본 유학 중에 만난 한국인 중 가장 진중하면서도 유머러스했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정말 좋은 사람. 그 자체로 좋았다.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낭만적으로 들렸던 적은 처음이었다.


더운 여름날, 나에게 "니 이쁘다"고 했다. 방과 후 모임에서 "내 옆에 앉아라"고 했다. 쉬는 시간 나에게 다가와 "같이 편의점에 가자"고 했다. "나랑 얘기 좀 하자"고 했다.


나는 "더위 먹었냐"고 했다. "왜 이러냐"고 했고 "내가 왜 오빠랑 편의점에 가느냐"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라고 했다.


오빠는 "점점 이상하게 틀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끝으로 그 해 가을 다른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빠르기도 하지.


처음엔 겁이 덜컥 나서였다. 모든 게 무너지면 안 되니까. 나의 계획과 흐름이 모두 무너지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 또한 일정한 패턴의 내숭이더라. 심지어 업그레이드까지 된 내숭.

세월을 먹은 나의 내숭은 날카로운 발톱을 장착하고 사방에 벽을 치고 가시덤불을 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는 남자는 그 인류애를 인정해 노벨상이라도 줘야 한다, 고 생각했다.


여자의 내숭은 제각각의 개성으로 다양하게 구현되는 법이지만, 나의 내숭은 유독 맹점이 많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끝내 자기애를 놓지 못하는 내숭은 결국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나서 놓치는 것들이 많다.


차라리 밥 좀 덜 먹겠다는 내숭은 귀엽기라도 할 텐데.



그래, 맞다. 난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사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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