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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08. 2017

알고 싶고 보고 싶은, 진짜.

가끔, 나를 생각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제3자의 눈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싸한 표현으로는 '자기 객관화'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유추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내겐 필요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카톡 '나와의 채팅방'에 '너 잘 살고 있니?'라는 문자를 뜬금없이 보내본다든가,

일기를 쓰면서 치명적인 단점을 죽 늘어놓는다든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내게 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반응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 되짚어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어떤 단어에 꽂히기만 해도, 하루 종일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시비비를 가려내려고 아우성친다.


이런 내게, 주변의 친한 친구와 동료들은 '자기애'가 너무 강한 탓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것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그저 나를 믿지 못할 뿐이다.




왜냐고?

음, 지금부터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나열해보겠다.


1. 자신감이 없다. 그런데 자신감 있는 척한다.

2. 용기가 없다. 그런데 용기 있는 척한다.

3. 비교한다. 남의 떡이 늘 커 보인다.

4. 모든 걸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5. 한 번 질리면 소통 불가, 포커페이스 불가다.

6. 예민하다. 그래서 과대망상에 빠질 위험이 있다.

7. 자주 기분이 상한다. 그런데 쿨한 척한다.

8. 타인의 평가와 시선이 두렵다. 그런데 두렵지 않은 척한다.

9. 편견과 고집 투성이다.

10. 상황과 기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말과 태도)과 가치관이 수시로 변한다.


이게 어떻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의 모습이겠는가.

난..., '실은 그렇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나를 생각한다.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를.

다시 말하자면, 의심하는 거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못 미더워하면서...


어쩌면, 솔직해지고 싶어서다. 페르소나 따위의 우아한 사회적 용어나 들먹이며 나를 끊임없이 포장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지.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민낯에 좀 더 다가가고 싶다.

남들이 내게 해주는 말 대신,  나 스스로도 감추려 했던 창피한 언어들을 탁자 위에 마구마구 꺼내놓고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며 서서히 담백해지고 싶다.


그 언어들에 붙은 느끼한 기름덩어리와 음습한 이끼 같은 것들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깨끗이 없애고,

다시... 용기는 없지만 용기를 가지고 싶다 말하는, 사실 나는 아주 작은 것에도 상처받는 사람이라 말하는,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말하는, 너에게 상처받는 것이 제일 두려워 그랬다 말하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꽤 예쁜 눈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왼쪽보다 오른쪽 눈썹에 더 자신이 있으며 반듯한 콧날도 가지고 있다.


사람에 대한 인정이 있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발달했다.

예민한 성격은 때때로 평이한 사물을 독특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성능 좋은 눈이 되어 준다.

좀체 포커페이스가 되지 않는 내 안면근육들은,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재채기는 웃기고 웃음소리는 호탕하다.

늘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지만, 한 번 내려놓고 나면 그땐 '얄짤' 없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


정 많은 할머니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용기있는 척을 하다 보면

정말 무섭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우가 생긴다.

어떻게든 길은 생긴다, 는 생각으로 눈 질끈 감고 저지른다. 그러면 정말 길이 보인다.


어렸을 땐 너무 창피했던 통통한 손가락이 이젠 창피하지 않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고, 돈은 돈대로 없지만

나는 많이 웃고 많이 떠들며, 언제나 불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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