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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앞으로

회고

by Han

이번 달 초에 갑작스레 면접 제안을 받았다.


캐주얼한 스크리닝에 이어 2차 면접, 그리고 지난 주에 최종 면접까지 마쳤다. 가벼운 마음에서 나눈 대화는 어느덧 진지한 평가자리로 이어졌다. 단 1주일 만에 모든게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연봉, 근무 조건, 글로벌 환경 기타 등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했을 때 딱 맞아떨어지는 퍼즐의 한 조각처럼 나를 위한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체계를 갖춘 외국계 기업답게 "RPO"라고 하는 채용 에이전시에 업무를 위탁을 하고, 해당 에이전시의 채용팀이 후보자 발굴 및 스크리닝을 하여 기업 채용담당자의 업무를 대행하는 구조였다. 통상적으로 외국계 기업은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심지어 고스팅, 즉 "연락이 두절되는" 행위가 비일비재 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달랐다. 담당자는 응답성이 빠르고 친절했다. 의례적으로 보내는 Thank you letter도 답장해주고,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이야기 하면서 향후 절차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면접도 잘 봤다고 생각한다. 현재 조직 내의 어려움을 진단하고, 내 역량으로 어떻게 해소할 수 있고, 선험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득했다. 좋은 신호들로 가득했다. 이번엔 느낌이 좋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면접을 잘 봤다고 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판단은 기업에서 내리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잘봤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떠들어봤자 커튼 너머의 내부자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가 없다. 인사팀 재직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후보자의 역량과는 무관한 말도 안되는 변수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최종 면접이 종료된 이후로 한 주간 물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 같았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냥 무겁고 축 쳐진 느낌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쉽게 움직여지지 않기에 난 아직도 어리석고 갈 길이 멀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벗어날 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이 상태로 머물고 싶었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아 부질없는 짓만 계속 몰두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와서 다각도에서 현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어떤 결과가 있을지 분석 해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분석하는걸 즐겼던것 같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 있다는 것.

확실한 결과보단 불확실한 과정이 더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점점 더 취약해졌다.

그렇게 내면의 줄다리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다 이내 줄이 탁 끊어지면서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 켠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게 떠올랐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내일의 실패라면 실패라도 좋다. 그리고 성공이라면 성공이어서 더더욱 좋다.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도 내가 해온 선택들은 결국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갈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항상 밝혀주고 계속 나아가게 한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아직 기다림의 끝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신은 지금 이 기다림에 분명한 종지부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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