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플스 호텔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입니다. 오래된 역사와 호텔 곳곳에 깃든 다양한 스토리 덕분에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23년에 발표된 세계 50대 호텔에서 17위로, 싱가포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의 발상지이자,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촬영 장소, 수많은 국빈과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던 이 호텔에 방문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래플스 호텔의 이름은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탬퍼드 래플스 경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1819년에 영국인 래플스는 싱가포르 강에 상륙해 로컬 술탄과 우정의 조약을 맺었고, 이로 인해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래플스는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만들었어요. 덕분에 싱가포르는 5년 사이에 동남아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 되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싱가포르 역사의 시작과 래플스의 도시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렸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래플스 호텔의 주소는 비치 로드 1번지입니다. 간척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해안선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에요. 원래 이곳은 무역을 위해 싱가포르로 온 유럽 부자들이 살던 지역이었어요. 1830년대에 개인 소유의 주택이 지어졌고, 이후 애머슨 호텔로 사용되다가 래플스 인스티튜션 (1823년에 개교한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학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887년에 아르메니아 출신의 사키스 형제들이 이 건물을 다시 임대했고, 작은 호텔을 최고급 호텔로 업그레이드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여행객들을 위한 호텔이 잘 될 것 같다는 선견지명이 있었거든요. 1887년 12월에 객실 10개를 갖추고 호텔을 개장했고, 높은 수준의 숙박 시설과 서비스로 부유한 고객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해졌습니다.
래플스 호텔은 영국 콜로니얼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새하얀 외관이 특징입니다. 여행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던 로비 앞 길은 아직도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래플스 오케스트라는 밤 12시까지 매일 연주하며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1942년 2월,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일본군이 래플스 호텔에 들어왔을 때 방문객들은 마지막 왈츠를 추고 있었대요. 그 사이 호텔 직원들은 호텔의 은식기와 소고기 트롤리 등을 팜 코트 정원에 묻었다고 합니다. 이 소고기 트롤리는 복원되어 오늘날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군은 호텔 이름을 쇼난 료칸(남쪽의 빛 호텔)으로 바꾸고, 일본군 사령부로 사용했습니다. 1945년에 영국 해군이 호텔을 재탈환한 이후에는 전쟁 때문에 억류되었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삶을 재건하기 위해 사용하는 임시 센터로 기능했다고 해요.
1987년에 싱가포르 문서 보관소에서 래플스 호텔의 원본 도안을 찾았고, 싱가포르는 건물을 복원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보급 건물을 공사한다는 부담도 있고, 설계도면이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 많은 건설사들이 이 공사를 꺼렸다고 해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쌍용건설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 쌍용건설 직원들은 싱가포르는 물론 주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뒤지며 래플스 호텔의 과거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찾아내고,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들까지 수소문했다고 해요. 결국 쌍용건설은 지하 1층, 지상 3층 104개 객실로 과거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초현대적으로 건물을 복원하고, 호텔의 역사관과 명품관 등 상가 건물 4개 동을 새로 지었습니다.
래플스 호텔의 로고에는 여행자의 야자나무가 그려져 있어요. 이 나무는 잎에 최대 1.5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잎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 자연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행자의 야자나무라고 불린대요. 래플스 호텔은 모든 여행자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 로고를 만들었다고 해요.
래플스 호텔 곳곳에서도 여행자의 야자나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롱 바는 싱가포르 슬링이 처음 만들어진 곳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먹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었대요. 남성들이 진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동안 여성들은 차나 과일 주스를 마셨습니다. 1915년에 영리한 바텐더 응이암 통 분 (Ngiam Tong Boon)은 과일 주스처럼 보이지만 술이 들어간 칵테일을 만듭니다. 진을 베이스로 파인애플 주스와 라임 주스, 큐라소, 베네딕틴을 넣고 그레나딘과 체리 리큐어로 핑크 컬러를 더했습니다.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내는 싱가포르 슬링은 순식간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2층의 바의 장식은 소박하면서도 정겹습니다. 1920년대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카운터는 열대 농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롱 바에서는 땅콩을 먹으며 껍질을 바닥에 버리는 옛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요. 아래 그림을 보면 옛날 롱 바의 풍경과 함께 땅바닥의 땅콩 껍질이 눈에 들어와요.
지금 롱 바도 그렇습니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싱가포르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쓰레기를 바닥에 던지는 것을 허용하는 곳일 거예요.
래플스 호텔 롱 바에서 25잔의 싱가포르 슬링이 주문될 때마다 칼리만탄 또는 수마트란 열대우림에 토종 수목 한 그루를 심는다고 해요. 싱가포르 슬링의 발상지에서 옛 전통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래플스 호텔 2층의 롱 바에 가 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래플스 부티크는 기념품과 홈 데코, 고급 식료품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가면 호랑이 관련된 상품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래플스 호텔이 싱가포르의 마지막 호랑이가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에요.
1902년, 한 호랑이가 비치 로드의 서커스 공연장을 탈출했습니다. 싱가포르 강을 헤엄쳐가다가 사라진 호랑이는 밤에 호텔 당구장에서 발견됩니다. 호텔 관리원 필립스 씨는 급히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리엔필드 소총과 몇 발의 중공탄을 챙겨 현장으로 달려갔대요. 어둠 속에서 호랑이를 발견한 필립스 씨는 즉시 세 발을 발사했으나 맞지 않았고, 소란에 놀란 호텔 투숙객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러 나왔습니다. 이후 필립스는 어둠에서 빛나는 호랑이의 눈을 발견하고, 중공탄을 정확히 쏘아 호랑이를 제압했습니다. 키 2.3미터의 호랑이였다고 해요.
제복을 입은 도어맨도 래플스의 아이콘입니다. 도어맨은 래플스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데, 깔끔한 흰색 터번과 흰 제복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래플스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직원이고, 호텔이 상을 받을 때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시상식에 직접 참여한다고 해요. 국가 원수나 고위 인사, 셀럽을 포함한 모든 게스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래플스의 얼굴입니다. 로비에 가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도어맨과 사진을 찍고 있어요. 그 인기에 힘입어 라플스 부티크에서는 도어맨 굿즈도 판매하고 있답니다.
이 외에도 차, 컵, 의류 등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니, 시간이 나신다면 방문해 보세요.
래플스 아케이드는 쇼핑과 미식을 위한 공간입니다. 롤렉스, 파텍 필립, 반 클리프 아펠 등 명품 브랜드가 모여 있고, 마스터셰프 제렘 렁(Jereme Leung)의 중식 레스토랑 Yi, 프랑스 요리의 전설인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선보이는 지중해식 요리를 만날 수 있는 Osteria BBR,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 안 소피 피크(Anne-Sophie Pic)의 프렌치 레스토랑 라 담 피크(Le Dame Pic) 등에서 맛있는 음식도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