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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pr 28. 2021

아무의 일상도 아닌, 일상

사람 때문에 웃었다가, 사람 때문에 울다가




느지막한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오늘에야말로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학교 앞에 남아있는 자전거는 한대. 차가운 날씨에 상쾌함을 느끼며 도착하니 딱 한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원과는 다르게 등록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때 누군가 길 끝에서 달려왔다.





혹시 지금 따릉이 타시냐고, 너무 죄송한데 제가 지금 회사에 늦어서 빨리 가봐야 하는데 양보해주실 수 있냐고. 많아봐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다.




 그래서 괜찮다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내 걸 취소하고, 자기 걸 등록하고 자전거를 빼가는 동안 남자는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 혹시 다른 정류소가 어디인지는 아시죠, 당연히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하다고 남자는 자리를 떴다. 다른 정류소를 찾아 몇 발 떼지도 않았는데 다시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없었다.




뜬금없는 부탁과 감사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나는 다른 역 앞까지 찾아가서 자전거를 타야 했지만 몰랐던 가게들을 마주하며 걷는 길은 즐거웠다.








마포대교를 건너는 중에 생명의 전화가 보였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에서도 한강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내가 직접 보게 된 한강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저걸 넘을 각오를 했다는 건 지금의 삶이 얼마나 괴롭다는 것일까.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따끈한 빵 하나와,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를 사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빵을 반 정도 먹고서 책을 집어 들었다.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적당한 말소리들과 바람, 맑은 공기가 코 끝에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한순간이었다.




전쟁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은 소리였다. 까만 옷을 입은 누군가 떠올라서 순간 잠수부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다급하게 몰려들고,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는 걸 보고 자살시도였다는 걸 알았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물에 들어갔고 또 다른 사람이 물에 들어갔다. 내 근처에 있던 사람은 튜브를 가져왔다. 모두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119에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정확한 위치조차 알지 못했다.







물에서 나올 때 얼굴이 보였다. 그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울고 있었다. 내가 여태껏 보았던 절망과 좌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애는 홀로 앉아있었고 나는 무얼 해도 되는지 몰라서 가만히 서있었다. 말을 걸어도 될지, 이 옷을 덮어줘도 될지, 힘들 때 얘기는 들어줄 수 있다고 번호를 줘도 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내 말 하나가 상처가 되고 내 행동 하나가 살을 후빌까 봐.








그곳에서 서성이는 사이에 119와 구급차가 도착했다. 얼핏 듣기로는 수심이 낮아서 큰일이 없었다고 했다.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대는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피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걸 보고 나도 모른 척 돌아섰다. 내가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돕고 싶었고, 내가 가지고 온 명함 하나를 쥐어주고 싶었을 뿐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구급차가 떠나고서야 후회가 몰려왔다. 물이 찼을 텐데 이 잠바를 둘러줄걸.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손 잡아줄 걸. 그랬다면, 그 애도 조금 더 괜찮았을지 모르는데. 사실 누군가 말을 걸어주고 얘기를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내가 겪은 일상들이 일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주 특별한 일들이어서, 너무 드문 일이어서,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누군가 알려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는 말 대신, 이렇게 행동했다면 도움이 됐을 거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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