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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y 02. 2021

소라빵

단팥빵을 좋아하세요?



빵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빵순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설레는 말이 있다면 '갓 구운 빵'이라는 네 글자이다. 갓, 구운, 빵. 이른 아침 빵집을 지나갈 때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식욕이 마구 돋는 냄새를 이것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김이 나는 빵을 뜯어 입에 넣고 우유와 같이 먹고 싶은 기분이 든다. 갓 구웠다는 말만큼 달콤한 말은 없다. 막 구워진 빵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따끈따끈하고 보드라운 빵이 먹고 싶다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욕구를 끌어내는 향이다.






어쨌든 이런 빵 중에서 어릴 적에 정말 좋아했던 빵은 바로 소라빵이다. 예전에는 집 앞 제과점에서 팔았지만 요새는 파는 곳이 드물어 가끔 가다 편의점에 발견하고는 했는데, 마주친다면 배가 부르든 입맛이 없든 상관하지 않고 사 왔다. 만나기 힘든 사람을 놓치기 싫은 것처럼 빵도 마찬가지다.









내 손보다 조금 더 큰, 길쭉한 소라 모양의 빵. 하루에 초콜릿 하나가 최대의 사치였던 어린 시절에는 초코 크림이 가득 들어찬 소라빵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기본적으로 빵집에 가면 단팥빵이 있다. 동네빵집을 가도, 제과점을 가도 있다. 가장 보편적인 빵 종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말 아주 가끔씩 생각나서 사 먹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단팥빵을 싫어했다. 당연히 빵을 싫어한 게 아니라 팥을 싫어했다. 지금도 팥은 콩의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하지만 그때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럼 붕어빵도 안 먹었냐 묻는다면 슈크림 붕어만 먹었다고 일러두고 싶다-






그러니 나에게 소라빵은 운명과도 같았다. 팥빵처럼 똑같은 짙은 갈색의 내용물이 들어찬 빵이었지만 초코맛이었다. 가장 싫어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맛이라니. 존재만으로도 아이러니했다. 처음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스폰지밥에 나오는 소라고둥처럼 신기하게 생겼고 안에는 까만 게 가득했는데. 의심을 걷어내고 빵을 뜯어먹으니 질릴 만큼 초코맛이 났다.




때로는 초코크림만 핥아먹기도 했다. 금기를 어기는 기분이었다. 혀가 저리고 목이 타들어가게 달았다. 비린내 나는 소라의 모습으로 이런 맛을 내다니. 새콤달콤한 초록색 딸기를 먹는 것처럼 오묘했다.







소라빵은 먹을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크림이 없으면 화가 나지만 막상 크림이 너무 많으면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걸까, 하고 달콤함을 음미한다. 어쩌면 소라빵은 초코맛이라서 질리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초코 대신 팥이 있었다면 내가 지금도 소라빵을 찾아다녔을까. 이제는 단팥빵도 좋아하지만 그건 또 아니었을 것 같다. 초코는 자꾸 질리고 싶지만 단팥에는 질리고 싶지 않다. 초코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자꾸 질리고 자꾸 찾고 싶다.





아직 서울에서는 소라빵을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이 곳에서는 어디에 소라가 숨어있을까? 어디에 가면 질리도록 초코를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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