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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14. 2021

나의 서울이 너라서 다행이야

40년 뒤 너의 전원주택 옆에 있고 싶어



오랜만에 손님이 다녀갔다. 장장 2박 3일이었다. 나의 자취방에 누군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고 간다는 건 친분의 증표이다. 내가 가장 고대했고, 가장 기다렸던, 예상치도 못한 손님이었다.



이 친구에 대해서는 '콩나물 불고기'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나의 대학 생활이 곧 너라고, 나의 서울이 너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이다. 대전에 살고 있는 이 친구는 내가 겪어본 적 못했던 방식들로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한다.














이 친구를 만나면 머리가 찌릿찌릿하다.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세계를 만나는 기분이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우연히 발견한 밥집이 맛있다던가, 우연히 발견한 길이 시원했다던가. 호기심에 이끌린 선택이 예상치 못한 만큼의 행복과 그 이상의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친구와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얻는 즐거움은 잴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과제물을 만들고 있던 오후에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학교인데 보고 싶다고, 바빠서 그냥 내려가려 했는데 내가 너무 보고 싶다고. 결국 우리 둘은 없는 시간을 쪼개고 나눠서 만났다. 정세랑 작가님의 에세이 중 '좋아하면 무리하게 된다''는 말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무리하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 나에게 그 친구가 그런 존재였고 내가 그 친구에게 그런 존재라는 게 기뻤다. 




오늘 자고 가면 안되냐는 말에 다음날 오전에 시험이 있던 친구는 머리를 썼다. 오늘 밤에 내려갔다가 내일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대전과 서울을 옆집 드나들듯 이야기했지만 나로서는 거절의 말은 내뱉을 생각도 안 했다. 그래도 무리하게 되는 애정이 유지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괜찮겠냐고 한번,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두 번 물었다. 전혀 아니라는 말에 그러면 좋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 친구와 있으면 나는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솔직해진다. 원래도 말이 많아 속을 잘 털어놓는 나지만 이 친구와 있으면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탈탈 털게 된다. 마음껏 쓸 수 있는 빈종이들을 앞에 두고 써 내려가는 기분이다. 허망함과 부끄러움이 아니라 편안하고 고요하다. 우리의 얘기는 대개 새벽까지 이어진다. 이번에도 금요일은 세시, 토요일은 네시까지 이야기했다. '어떤 일'을 얘기하는 걸 넘어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게 대부분이다. 어쩌다 보니 가장 깊은 친구가 됐다. 






이야기를 나누는 새벽은 대체로 조용하다. 가끔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와 드문드문한 말소리를 지나서 단절된 공간 속에서 둘만이 말을 나눈다. 대화할 때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친다. 호응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고음도 아니고 저음도 아닌, 듣기 좋은 목소리이다. 네 목소리는 마치 집에서 직접 만든 요플레를 한입 떠먹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했더니 친구는 너 요플레 안 좋아하잖아, 하고 반박했다. 너무 세심하게 기억하는 탓에 내가 꾸덕한 것보다 조금 부드러운 걸 좋아한다는 변명을 덧붙여야만 했다.




다른 사람과의 말은 흘러가버려서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들은 말도 잊고 마는데 이 친구와의 말은 다르다. 추억을 나누는 게 아니라 순간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빛바랬다는 느낌보다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내가 내뱉은 새벽의 넋두리들을 친구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들로 시간을 채우지 않는다. 어디 가서 하지 못할 이야기들만 한다. 













이 친구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말 하나와 행동 하나에 애정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주는 것에 익숙했다. 받는 건 언제나 고맙고 부담스러웠다. 주는 게 더 행복했다. '준다'는 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주려고 하고,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 모든 게 사랑하는 순간인 것이다.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고, 선물하려 하고,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보고 싶다, 반갑다, 고맙다, 어떠한 긍정적인 감정도 감추지 않는다.


내가 찾지 않아도 먼저 나를 찾아준다. 연락 자체는 귀찮아하면서 내가 생각나면 불쑥 연락을 한다. 용건이 그것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라는 존재가 제대로 발을 딛고 서있는 기분이다. 타인에게 사랑받는 건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말들이 모여 관계가 쌓인다. 밤을 보낼 때마다 관계가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나의 말을 언제나 경청해주는 친구가, 나의 말이 언제나 궁금하다는 듯 말해주는 친구가, 이토록 소중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이 친구를 1년 만에 만나서 한 말은 너를 보니까 이제야 서울에 온 것 같다는 말이었다. 대전과 창원에 살기 때문에 둘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도, 대전에 사는 친구가 나에게는 서울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친구를 보면 1학년 때가 생각나고 둘이서 하게 된 처음들이 생각난다. 처음 친구와 간 한강, 처음 놀러 간 자취방, 처음 돌아다닌 새벽길..... 




분명 나의 서울 생활에 이 친구가 없었더라면 외로웠을 거다. 서울 같은 건 다시 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슷한 게 많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연고가 없다. 서울에 있는 것보다 본가에 있는 게 더 행복하다. 놀 때는 놀더라도 자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서로 자신의 집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대학을 졸업하면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우리의 일부분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분명 그때도 서로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적당히 무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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