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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20. 2021

완벽한 타인의 친절을 먹고 살아요

당연하지 않은 배려



이틀 전에 처음으로 고양을 방문했다.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맛있는 음식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들도 다 좋았지만 나에게 있어 유난히 기억에 남을 건 카페에서의 친절이었다.


고즈넉한 분위기 아래 작은 아씨들에 나올법한 커다란 목재 식탁이 놓여있는 곳에서 차를 마셨다. 그곳에서 언젠가 오래도록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를 주문할 때도, 사장님은 친절하셨고 가져다줄 때에도 친절하셨다.



내 옆자리에는 내가 앉기 전부터 서류가방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뒷자리에 앉아계신 남자분께서 자리가 없어 잠시 올려두고 잊으신 모양이었다. 굳이 먼저 나서 말을 걸기에도 귀찮아서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 손님이 나갔을 때, 친구에게 문득 얘기를 꺼냈다. 이 가방 저 손님 물건이 아닐까? 남의 일에 영역을 지키지 못하고 나서는 것 같아 고민을 하다 사장님께 조용히 말을 전했다. 손님의 요청에 주의 깊게 얘기를 듣던 사장님은 말해줘서 감사하다며 지금 확인해보겠다 하셨고 다행히 내 오지랖은 참견으로 끝나지 않았다. 맞다고 환하게 인사하시는 사장님의 웃음이 마스크 너머로 느껴졌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까지 사장님은 의무를 넘어서는 친절을 보여주셨다.



카페에서 손님에게 행해야 할 의무라 하면,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전달해주는 정도가 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웃음이나 따뜻함이 있다면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정이 가게 된다. 오지랖처럼 보일 말을 하길 잘했다고 자신을 칭찬해줄 용기가 생긴다. 다음에 또 이런 친절을 느끼고 싶어 가게를 찾게 된다.











모두가 그렇듯 나는 일상 곳곳에 묻어나는 사소한 배려와 용기의 순간들을 좋아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문을 열어주는 동작이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뒤따라오는 걸 눈치챈다면 문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평소라면 죽어도 하지 않을 '당기시오'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배려들은 하루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십 번 수백 번, 혹은 수천번씩 일어나고 있다. 착한 일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지점이 감동적이다. 나 역시 당신의 입장이었다면 불편할 거라는 공감과 앞사람이 문을 열어줬을 때 느꼈던 경험이 그런 순간들을 이어지게 한다.




무언가를 전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을 가리는 건지 안 가리는 건지 드문드문하게 알 수 없는 성격인데 사실을 정정하거나 전달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모든 일상의 대화가 까마득해지는 3년 전의 일이었다. 아파트 앞을 걸어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택배기사님을 본 적이 있다. 택배를 한아름을 안고 뛰어가시던 도중 영수증 같은 하얀 종이가 땅으로 떨어졌다. 주워 들어보니 누가 봐도 중요해 보이는 종이였다. 결국 몇 초간 고민하다 기사님께 종이를 전해드렸고 기사님은 두 번 보지 못할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이런 일들이 모여 다음에도 내가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준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나누는 대화들, 청소할 때 배려를 해주는 손님과 힘든 일 없냐고 다독여주는 사장님, 카페에서 갑자기 서비스라며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내주시는 사장님들. 찾아오는 건 큰 행복들이 아니다. 그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따뜻함들. 누구라면 공감할법한 무난하고 평범하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은 배려. 어느 순간 그런 배려들이 날 일으키기도 한다. 타인과의 거리가 먼 만큼 주게 되는 영향이나 깊이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날은 짧게 지나가고 어떤 날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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