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예쁜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서, 한쪽에는 커다란 쇼퍼백을 매고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고 말하는 어른이 될 줄 알았더랬다. 로망이 깨진지는 오래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모습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날들은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무리여서 카페 모카나 바닐라 라떼로 대체하고 만다.
물욕도 없고 식욕도 없는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게 커피였다. 어느 집은 커피가 진하다, 어느 집은 커피가 연하다, 원두의 맛이 어떻고 원산지가 어디고......... 남들이 보기에도 커피에 대한 사랑이 열정적이거나 저 사람은 커피에 관해서는 목숨을 건다던가 그러지는 않았지만 다만 커피를 고르는 기준이 깐깐했다. 철학도 뚜렷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나는, 엄마가 건네주는 커피에서 얼음만 쏙 빼먹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성숙해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러질 못했다. 수능이 끝난 후 친구들과 몰려간 카페에서 커피가 들어간 메뉴를 모조리 빼고 나면 가장 비싼 에이드나 스무디 종류만 남았다. 잔고의 생존을 위해 대학에 간 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입맛을 길들였다는 말은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커피로의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던가.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케하고, 두려웠던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것. 바로 애정이었다. 사랑만큼 대책 없고 강력한 것은 없다.
나에게 커피에 도전할 구실을 만들어준 건 바로 사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에 카페모카가 등장한 것이다. 그냥 카페모카 하나요, 하고 지나친 게 아니라 어떤 의미를 담는 '소재'로 등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주인공을 배려해 카페모카를 만들어왔다.-이 정도의 설명으로도 어떤 소설인지 알아채는 이들이 충분히 있을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카페모카는 어떤 커피보다도 가치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애정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커피 한 잔을 사 먹게 할 정도는 됐다.
수업에 가기 전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대학에서 사귄 첫 친구와 함께 주문을 했다. 뭘 마실 거냐는 질문에 카페모카,라고 대답하고 혼자서 들떠있었다. 휘핑을 잔뜩 올리고 코코아 가루를 뿌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의지로 먹는 커피가 처음이라는 말에 친구는 신기해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 보였다.
당시 업로드했던 인스타 스토리
음료를 받아 들자 텍스트가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문자로의 자극도 좋지만 시각적인 자극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음료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좀 더 연해 보였고 위에 올라간 휘핑이 동화책 속 삽화 같았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삼켰다.
크림이 먼저 목을 넘어가고 그다음은 차가운 음료였다. 커피 향이 나면서 달콤 쌉싸름한 맛이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쓰시던 차의 방향제와 비슷한 향이었지만 그것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어른인 척하기에 적절한 맛이었다. 커피 치고는 쓰지 않고 달달한 편인 데다가 커피 맛도 좀 나고, 휘핑크림도 좀 멋이 있는 것 같다. 어떻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이런 감상을 종합적으로 합쳐 한 마디만 내뱉었다.
"맛있어!"
언제나 말로 표현하면 단순해지는 법이다.
그 뒤로는 매일 같이 카페모카를 사 먹었다. 내가 보는 소설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맛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커피의 맛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맛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덕분에 지갑도 지킬 수 있었고 카페에서 메뉴의 선택지가 넓어졌으며 다른 커피로까지 도전하게 되었으니 애정의 결과는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