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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15. 2021

9 to 6의 시작

진짜 사회를 경험할 시간




최근 들어 가장 우울한 날이다. 창원에서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의 계획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교환학생을 위해 2학기부터 내년 1학기까지 1년 휴학을 결심하고 나의 마지막 서울 생활을 즐겨보고자 대면 수업을 신청했다. 그래서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서울에서 지내게 됐다. 바쁜 학기를 보내고 종강이 찾아왔을 쯤에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였다. 그때 생긴 피부염은 지금도 낫지를 못했다. 요양을 핑계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한 달 전, 창원으로 돌아왔다.

8월에는 컴활과 포토샵 시험을, 9월에는 중국어 시험을 계획했다. 휴학하는 기간 동안 외국어 공부에 힘쓰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금방 망가지게 됐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설마, 싶은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설마 당장 인턴이 되겠냐며 지원서를 접수했다. 놀랍게도 합격 공고를 받고 면접을 보게 됐다. 




저번 면접 경험으로 어떤 답변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대강 알았기에 면접 준비는 힘들지 않았다. 막상 회사를 앞에 두고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는데 면접 분위기는 예상보다 편안했다. 나를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소개나 지원동기 등, 마땅히 해야 하는 질문들을 거쳐 영원히 잊지 못할 질문들도 받게 됐다.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기 전에도 내가 하고 싶은 '진솔한' 말들이 먼저 쏟아져 나왔다. 나라는 '사람'에 관심을 가진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면접관분들은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면접을 마칠 때에는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활동을 준비하면서 면접을 정말 많이 봤다. 친절한 분들도 계셨지만 가끔은,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냥 흔하디 흔한 대체품처럼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놓고 욕하거나 깔보는 것만 무시가 아니었다. 눈빛 하나와 행동 하나에도 어떤 생각으로 나를 대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 회사에 감동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나를 하나의 사람으로 대해주고 있었기에. 게다가 어떤 분은 어디 가도 잘할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결과에 관계없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내가 보게 될 면접들에서도 이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힘들 때면 떠올릴 수 있는 타인의 말이 있다는 건 꽤 위로가 되는 법이니까.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럽고 기분 좋은 면접을 봤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에 합격 연락을 받았다. 






최종 합격했다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본 탓에 눈물이 조금 났다. 엄마도 우리 딸 기특하다면서 같이 울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우리 집은 분주해졌다. 회사 근처의 집을 알아보고, 출근용 옷과 신발을 사고, 입사 서류들을 준비해야 했다. 준비하는 내내 설렘과 긴장 사이에 놓였고 가끔은 우울하기도 했다. 이렇게 갑자기 취직이 될 계획은 없었는데. 동네 친구들은 축하하는 동시에 안타까워했다. 누구도 몰랐던 이별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어떤 대가를 받고 임한다는 게 두렵다. 내가 해왔던 아르바이트도 화상 과외나 스터디 카페가 고작이었고 본격적인 업무를 해본 적은 없었다. 이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 된 셈이다. 



인턴 합격,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최근 3년간의 소원은 모두 원하는 곳에 합격해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세상의 너무 많은 탈락이 나의 쓸모없음을 입증하는 것 같아 괴로웠었다. 그런데 나를 존중해준 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게 됐다. 덕분에 여태까지 내가 해온 노력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보 같지 않았다고, 충실하게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고. 그것만으로도 큰 구원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열심히 일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두려워말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자. 분명 이 날을 웃으면서 회상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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