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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21. 2021

텐동

기름으로 피로를 씻어냅시다

우리 학교 앞 최고의 맛집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먹어볼 수 없는 맛집을 찾는다면, 역시 텐동 집 밖에 없다. 텐동을 좋아해서 웬만한 텐동으로는 성이 안 찬다는 이들도, 텐동의 느끼함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모두 이 집의 텐동을 먹게 된다면 감탄, 또 감탄하게 된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을 거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튀김은 뭐든 맛있고, 아무리 맛없는 것들도 튀김옷을 입고 나면 매력적으로 변한다. 우리가 음식에게 부릴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임이 틀림없다. 난 튀김은 좋아했지만 텐동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튀김은 맛있지만 그걸 굳이 밥이랑 먹어야 하나. 달짝지근한 소스까지 뿌려가면서? 뭘 먹든 소스보다는 오리지널을 좋아하기에 그런 부분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텐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본 여행에서였다.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일본에 교환학생을 가있던 언니에게 엄마와 놀러 간 것이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간 건 아니니 관광보다는 휴양에 가까웠다. 맛집이라고 찾은 건 초밥집 하나뿐이라 주변에 보이는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텐동을 먹은 것도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식당이라고 하면 맛은 보장되지만 여행 가서도 먹을만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안전한 선택지였다. 백화점에서 내가 고른 건 소바와 모둠튀김 정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튀김은 명절이 아니면 굳이 먹을 일이 없었고, 새우만 있는 게 아니라 보기 싫은 야채들도 섞여있어서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튀김을 한 입 먹는 순간, 나는 왜 사람들이 튀김에 미쳐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튀김이 이런 맛이라니! 거짓말! 내가 여태 먹은 튀김들은 모두 가짜였구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식당의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나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튀김의 매력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이었다.



 





대학교 1학년 가을, 학교 앞에 텐동 집이 생겼다. 가게는 굉장히 작아서 한 번에 10명도 못 들어갈 정도였지만 생기자마자 입소문을 탔다. 매일 밖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학교 앞에서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후기가 좋은 '새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텐동은 그날이었다. 바삭바삭한 튀김과 달콤 짭짜름한 소스의 조합은 그야말로 감동의 연발이었다. 새우, 연근, 고추, 오징어, 단호박, 김은 완벽한 조합이었다. 나는 한 입씩 여러 개를 베어 먹는 걸 좋아했는데 자기들끼리의 궁합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텐동을 먹으면 나도 행복해지고, 같이 먹는 사람도 행복해지고, 밥을 먹는 이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할 때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서 일본 드라마를 켜놓고 공부를 했다. '와카코와 술'이라는 드라마였는데 특별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음식이 좋아서 쓰기 시작한 내 글처럼, 주인공은 그저 먹기만 했다. 집 근처에서, 가끔은 색다른 곳에서, 여행 간 곳에서, 먹는 걸 반복했다. 특별하지는 않아도 곳곳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참 낭만적이어서 어쩌면 나도 저런 직장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난 일분이라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지하철에서도 뛰고, 버스정류장까지도 뛰는 직장인이 되었지만.


피곤하지 않은 날이었다. 회사의 피로가 적당히 쌓였고 스트레스받을 만한 일은 없던 때. 사수에게 혼나지도 않았고 실수를 해서 주눅 들 일도 없었다. 회사를 다닌 만큼 피곤했다. 그날따라 유독 텐동이 생각났다.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아서 그곳에 서있으면 텐동 집의 간판이 보였다. 특별히 일찍 퇴근한 날은 아니었지만, 늦은 날도 아니었다. 결국 눈앞에 버스가 보이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버렸다. 평소라면 붐비는 텐동 집은 저녁을 먹기엔 늦은 시간 덕분인지 사람이 없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고, 이 순간만을 느끼고 싶은 때. 어떤 자극도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 한잔만 홀짝홀짝 마시며 앉아있었다. 매번 들여다보던 휴대폰도 덮어놓고, 귀에서 빠질 줄도 몰랐던 이어폰도 빼버렸다. 사람들이 밥을 먹는 소리, 요리사와 직원 사이의 작은 대화, 튀김이 튀겨지는 소리. 소리만을 들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텐동이 나왔다. 뜨근한 장국 하나와 튀김이 가득 올라간 텐동 한 그릇.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짐해졌다.



맛은 당연 일품이었다. 튀김을 어지간히 싫어하거나, 애초에 느끼해서 튀김을 여러 개 먹는 게 힘든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바삭함이다. 생맥주 한 잔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평일에 술을 마시고 다음날 멀쩡히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배가 고프지만 튀김만큼은 꼼꼼하게 음미하며 먹기로 했다. 속이 말랑한 새우를 먹고, 그다음에는 중화시키는 매력이 있는 연근을 먹는다. 간간이 꽈리고추튀김을 먹는 걸 깜빡해서는 안된다. 바삭바삭한 김 튀김도 빼놓을 수 없다. 오징어와 연근도 꽤 잘 어울린다. 서로서로 맛을 보충하며 가득 채웠다. 마지막은 오래간만에 김 튀김으로 마무리했다.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니 버섯 튀김이 거슬렸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았겠지만 최근 들어 내가 야채에 대해 편견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고-야채에게 사과하겠다-가지 튀김도 생각보다 맛있었기 때문에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튀김이 남으면 튀김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이 튀김을 만들어준 요리사한테도 미안했다. 물컹한 식감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먹을만했다. 느타리버섯은 가끔 질긴 구석이 있다. 그런 점이 참 싫었는데 튀김도 그 점까지는 막지 못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먹었다. 튀김으로서도 나름 노력을 한 것 같았다. 버섯인 걸 몰랐다면 잘 먹었을 것 같기도 했다.



간만에 싹 비워진 그릇을 보자 뿌듯했다. 잘 먹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다. 배가 든든했다. 또다시 찾아올 피로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진 기분이었다.


또 허전함이 느껴질 때면, 피로가 쌓일 때면 주저 없이 이 식당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 식당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좋겠다. 여기보다 맛있는 텐동을 파는 곳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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