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근처로 이사 온 것의 장점은? 언제나 시장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또 근처에서 열리는 장에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는 점.
어제는 엄마가 장에서 옥수수를 사 왔다. 가득 쌓여있는 옥수수를 보고는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엄마를 타박했는데 엄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한 봉지에 2천 원, 세 봉지에 5천 원이었다고 한다. 그럼 당연히 세 봉지를 사야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매일 방 안에 있는 언니까지-옹기종이 식탁에 둘러앉아 옥수수를 나눠먹었다.
사 먹는 옥수수는 노오란 녀석보다 이렇게 알갱이마다 색이 다른 녀석이 더 맛있다. 옥수수는 온통 먹을 수 있는 부위뿐이어서 그냥 아무 곳이나 앙 하고 물 수 있다. 물어뜯으면 알들이 입안에서 뛰어다닌다. 터지면서 쫀득거리고 달콤해진다. 안에 들어있는 씨 같은 것 때문인지 먹고 있으면 입이 풍성해진다. 확실히,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이런 알록달록한 옥수수는 햇빛에 비추어볼 때면 어쩐지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먹는 것만큼 눈이 즐거워진다.
우리 집은 원래부터 옥수수를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아빠가 좋아했다. 음식은 가정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편식을 하는 내가 번데기는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이 집에서 자라 옥수수를 좋아하게 됐다. 여름철마다 아빠는 옥수수를 한 박스씩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수수가 가득 들어있는 택배 상자가 집에 도착했다. 아빠가 퇴근을 하면 거실에 모여 다 같이 옥수수를 깠다. 아마 일을 하는 건 엄마 아빠였을 거고, 언니랑 나는 그저 옥수수를 까며 장난치는 것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 잊어버리지 않을 유년의 한 조각이 되었다. 여름밤에 모여 앉아 옥수수를 까고, 다 깐 옥수수들은 엄마가 쪄서 내왔다. 그러면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옥수수를 마구 먹어댔다.
갓 쪄내 온 옥수수는 너무 뜨거운 탓에 엄마 아빠는 식혀서 먹으라고 언제나 말했고, 그럼 나는 옆에 앉아서 엄마 아빠가 먼저 먹는 걸 지켜봤다. 내가 맛있어? 하고 물어보면 고개만 끄덕이고 열심히 먹었다.
옥수수는 통으로 하나를 먹는 것보다 반으로 쪼갠 밑부분이 더 맛있었다. 윗부분에는 덜 자란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알갱이들도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밑부분은 그런 것 없이 고르게 컸다. 고르게 나있는 이빨 같았다. 그래서 난 매번 옥수수를 반으로 쪼개 달라고 졸랐고 엄마 아빠는 뚝, 하고 반으로 쪼개 줬다.
엄마는 순순히 밑부분을 양보했지만 아빠는 때로 밑부분을 두고 싸움을 걸어오기도 했다. 언니는 뭐든 욕심이 없어서 옥수수도 순순히 양보해줬다. 알고 보니 윗부분이 더 좋다고 한다. 크기도 작아서 먹기 편하고 밑부분보다 덜 뜨겁다고. 어쨌든 큰 싸움 없이 언제나 원하는 부분을 취할 수 있었다. 가끔 내가 밑부분만 먹으면 그릇에는 밑부분을 잃어버린 옥수수들만 줄줄이 남았고 누군가는 그걸 타박하면서도 결국은 다 먹어줬던 걸로 기억한다.
옥수수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고 한 줄씩 한 줄씩 골라 먹기도, 한 칸씩 골라 먹기도 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게 아니라던 엄마 아빠도 옥수수에는 관대했다. 옥수수를 먹는 건 맛에서도 즐거움에서도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먹고 나서 느껴지는 쾌감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음식이라면 먹으면 사라지길 마련인데 옥수수는 먹고 나면 내가 어떤 걸 먹었는지 그대로 남았다. 내가 이만큼이나 먹었어!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드는 음식이었다.
이제 우리 집은 택배로 옥수수를 시키지 않는다. 그저 생각이 날 때마다 드문드문 사 먹는다. 그래도 3개에 2천 원짜리 옥수수 한 봉지를 볼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옛날에 월급날이면 통닭을 사 오던 가장처럼, 옥수수를 마주치면 옥수수를 사 간다. 집에 가면 옥수수를 반길 사람이 너무나 많다. 반짝이는 옥수수를 품에 안고 갈 때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