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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Dec 16. 2020

경상도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가끔씩 나에게 당연한 것이 남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사투리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그것과 관련해 큰 충격을 겪었다. X표를 경상도에서는 꼽표라고 발음한다. 왜 꼽표냐고 물으면 마치 사람들이 강아지를 강아지라고 불러서 강아지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꼽표라고 불러서 꼽표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게 사투리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게 표준어가 아니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범주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는 이걸 엑스표라는 걸 듣고 더 충격을 받았다. 




꼽표. 얼마나 정겨운가. 글로 쓰면 쌍기역과 비읍의 조합이 예쁘지는 않지만 발음하면 굉장히 정겹다. 이 글을 읽으며 조심스레 꼽표, 하고 발음해보면 괜히 친근한 기분이 들 것이다.     










여러 사투리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난리 벚꽃장이다’. 고등학교 때에도 이 말을 모르는 애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마 진해 사람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경상도 사람도 잘 모르는 말일 것 같다. 군항제-진해의 벚꽃축제-로 사람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유래된 것이라 알고 있는 이 말은 분명 소란스러운 상황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핑크빛 배경이 상상이 가는 말이다. 할머니나 엄마는 정신이 사나우니 조용히 해라는 경고의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지만 나는 이 말에 기쁨과 웃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벚꽃을 보러 온 사람들의 행복이 조금씩 묻어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비슷한 말로는 ‘천지삐까리다’가 있다. 여기저기에도 너무 많다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이상하게 밤하늘의 별이 생각이 난다. 이것도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밤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천지삐까리’라고 말하는 사람의 뒤에도 우주가 보이고 내 머릿속에도 별이 가득 찬다.            




또 내가 좋아하는 건 ‘찌지미’이다. 찌지미는 흔히들 알고 있는 부침개를 이르는 말이다. 전구지-부추를 이르는 말-찌지미나 김치 찌지미를 나는 좋아한다. 부침개라는 말을 안 쓰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찌지미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정감이 간다. 아마 각자가 기억하는 단어의 색이 다르겠지만 나는 찌지미라는 말을 들으면 비가 오는 날 부쳐 먹는 짭조름한 음식이 생각난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 해가 저물어가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에 지글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뜨거운 찌지미를 후후 불어 먹으면 금세 먹게 된다. 


울산에 사는 친구는 찌지미를 '찌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가까운 지역이라 말이 비슷하지만 결국 부르는 말이 다르다는 게 우리가 다른 곳에서 자랐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꽤 재밌는 습관이 있는데, 이름의 끝 글자만 떼서 사람을 부른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친하면 성을 붙여 부르고 안 친하면 성을 떼서 부른다는, 암묵적으로 형성된 의미처럼. 친근한 사람을 부를 경우에는 끝 글자만 부른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선이라고 부른다. 선아, 선아, 나는 우리 엄마 이름은 외자가 아닌데 왜 할머니는 맨날 한 글자만 부르는지 궁금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부른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도 때로 친구들을 그렇게 부르곤 한다. 괜히 사랑이 깃드는 기분이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사투리가 유독 강렬한 분이셨는데, 우리에게 나중에 커서도 계속 사투리를 쓰라고 하셨다. 이것도 소중한 우리말이고, 우리는 이 말들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사투리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계속 사투리를 써야 이 말이 나중에도 남을 수 있다고 하셨다. 





서울에 있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사투리가 나온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다. 뭔가 그곳에서는 사투리를 내뱉는 게 어색해서 말하는 걸 꺼리게 된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나, 계속 생각한다. 그래서 막 창원에 내려와서 이야기할 때면 답답함이 사라진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억양, 내가 사랑하는 단어들. 나는 뼛속부터 경상도[경상도] 사람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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