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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an 10. 2021

공포 마케팅은 누구를 위해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지 말아 주세요



10월 말쯤이었다. 꾸역꾸역 서울에 10일 동안 올라가야만 했던 게 원인이었을까. 그래도 오래전에 정해진 일정이어서 마음을 반쯤 비운 채로 떠났었다고 생각했는데. 턱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품을 하는 데 피노키오 마냥 턱이 삐거덕, 하고 소리를 냈다. 언니가 이미 턱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나도 턱 디스크인 걸까.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교정기를 끼고 자야만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다닌다면 계속 다녀야 하니 서울에 있는 병원은 다니기 어려웠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무서워서 몇 번이나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병원에 갔을 때,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한쪽 디스크에만 문제가 생기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양쪽 디스크가 모두 문제가 생겨서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잘 벌어지던 턱은 병원에 가는 날이 되자 벌어지지 않아서 턱을 풀어줘야만 했다. 병원 의자에 누워 내 입안에 손을 넣고 턱을 교정하고 있으니 내가 기계가 된 것만 같았다. 뿌드득하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이질감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가 맞물리지 않는 걸 느꼈냐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음식을 먹는데 어느 쪽으로 씹었냐고 그동안 불편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도 자기 눈이 언제 깜빡이고 있는지, 침을 몇 초에 한 번 정도 삼키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음식을 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는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어느 한쪽으로 음식을 씹는 걸 질색했다. 그래서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의사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니, 왜 그쪽이 당황스러운 건지.







어쨌든 의사는 몇 번의 고민과 엑스레이 결과를 통해 내 디스크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을 내렸다. 디스크가 빠졌다고 했는지 걸려있다고 했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건대 분명 심각했던 건 틀림없다. 그래서 당장 교정기를 맞춰야 하는데 오늘 바로 제작이 어려우니 임시 교정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늦었다가는 큰일이 난다고, 하루빨리 교정을 시작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임을 재차 강조했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이 평온했다. 이런 일을 분명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쎄한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주어진 결과로 판단을 내렸겠지만, 오늘부터 교정기를 하지 않으면 곧 내가 음식을 못 씹게 될 것처럼 말하는 게 불편했다. 작은 두려움을 자극해서 몸집을 부풀리도록 끝없이 유도하고 있었다. 교정기의 가격은 백만 원. 절대로 싸지 않은 가격이었고 성인이 된 이후로 그런 비용들은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언니에게 그 백만 원이 아직 빚으로 남아있는 걸 알았고 노트북 할부를 갚은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결정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조금 생각해보겠다는 엄마의 말에도 의사는 동의하는 척 겁을 줬다. 아시겠지만 빨리 하셔야 해요.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어릴 적에도 비슷한 일이 있던 게 기억이 났다. 오래된 일이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에는 우리 동네에서는 척추측만증이 유행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교정깔창을 맞추고 치료를 받으며 교정기를 차는 애들이 적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17도 정도 휘어져있었는데 의사는 마치 내가 곧 죽을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15만 원 하는 교정깔창을 맞추고, 매달 30만 원씩 내며 치료를 받았다. 의자 위에 누워있으면 고장 난 로봇을 고치듯 이곳저곳을 푹푹 눌러댔다. 깔창을 맞출 때 의사는 앞으로 내 균형감각이 남들보다 많이 떨어질 것이고 내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꼭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몇 달간 다니다가 나 역시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치료를 다녀도 효과가 좋아지는지 모르겠고 의사가 말하는 것만큼 나는 균형감각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한쪽 등만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그런 불편함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결국 치료를 그만뒀다. 대신 엄마는 내 자세가 나빠질 때마다 쥐 잡듯이 나를 잡았다.  





그리고 5년쯤 뒤에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척추 엑스레이를 찍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재밌는 결과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내가 성장판이 열려있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로는 척추가 절반 이상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8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치료를 받을 때는 척추가 원상복귀가 된다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을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치료를 그만두고 나서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생긴 셈이었다. 




그래서 묘하게, 공포심을 자극하는 의사들에게는 불신이 생겼다. 




의식적으로 잘 때 턱을 벌리고 자고, 턱을 괴지 않고, 옆으로 누워서 자지 않는 습관을 한꺼번에 고쳤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싶었다. 그리고 딱딱한 음식은 먹지 않고 평소에 느슨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온찜질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나서 나는 다른 병원을 찾았다. 언니가 이 병원이 더 낫다고 추천해줬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턱 상태가 나쁘다고 하면 교정기를 맞출 생각이었다. 




이 병원에서는 내 상태가 월등하게 좋아졌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디스크가 제자리를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디스크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근육이 수축되어 있어서 이완되는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다음 주에 다시 진료를 해보자고 했고 선생님 몰래 가끔 고기도 먹었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저 이 모든 상황들이 운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글쎄, 상황을 온전히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사람의 두려움을 들쑤시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의 역할은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치료법을 판단하는 것이지 사람을 겁주는 게 아니다. 환자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에서 과도하게 공포에 몰아넣으면 환자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아마 나 역시도 이전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덜컥 교정기를 맞춰왔을지도 모른다. 마치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오지 않은 고통을 과장한다면 그건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공포 마케팅. 걸려든 이들은 철저하게 두려워하게 되고 걸려들지 않은 이들은 철저하게 불신하게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말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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