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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an 13. 2021

움직이는 고요함에게

익숙해질수록 사랑하게 된다

사람이 변한다면 죽는다고 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도 평생 죽을 일이 수두룩하다. 어릴 적만 해도 절대적인 법칙들이 존재했고 그 법칙은 깨지지 않을 줄 알았다. 살다 보면 나아진다는 어른들의 충고는 언제나 듣기가 싫지만 가끔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버스 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나는 평생을 뚜벅이 신세로 살아왔는데 차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차의 냄새, 승차감, 전부가 다 싫었다. 5분 이상을 견디지를 못했다. 엄마가 나를 위해 마련한 방향제는 더 역하게 느껴져서 그 향기마저 싫어하게 되었다.



택시도 싫어했고 흔들림이 심한 버스는 더 싫어했다. 유명한 멀미약들을 먹어보고 붙여봤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멀미 때문에 구토한 적은 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하게도 나를 이끌고 어디든 다녔다. 벼랑 끝에 모는 게 아니라 일단 떨어뜨려놓고 그 충격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게 우리 집의 교육방침이었다.




매번 구역질하는 어린 나를 데리고 차로 왕복 한두 시간에서 세네 시간까지 다녔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예쁜 곳들을 찾아다녔다. 차를 타는 건 죽을 만큼 싫었지만 내린 후에는 맛있는 것도 잔뜩 먹을 수 있었고 신기한 것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멀미가 두렵기보다 짜증 나고 싫은 일이었고 생각보다 단순한 성격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그걸 반복하면서 나의 멀미는 조금씩 나아졌다.     






멀미는 싫은 만큼 피해 갈 수 있었다. 평소에서는 차를 탈 일이 없었다. 주로 장을 보러 가는 슈퍼는 집에서 5분 거리였고 학교도 5분 거리였다. 다른 애들처럼 학원을 다니지도 않아서 그런 봉고차와는 더욱 인연이 없었다.      






아주 가끔 차멀미는 하면서 뱃멀미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정말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소원이 있다면 멀미를 아예 없애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갔을 때,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하기 위해 배를 탄 적이 있다. 해외까지 나왔으니까, 하고 큰 마음을 먹었다.




배는 차의 백 배 정도 싫다. 그 나이쯤에는 차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배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빠가 거제로 발령이 난 적이 있어서 작은 배를 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배는, 백발백중으로 멀미를 심하게 했다. 빗겨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멀미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서 머리가 빙빙 돌더니 구토가 계속 올라왔다. 결국 어느 순간 기절하고 말았다. 잠에 든 적은 있어도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깨어나고 나서 더 놀랐다. 일어나서도 속이 안 좋아서 가장 좋아하는 해산물들을 앞에 두고도 고사를 지내야만 했다.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지하철이었다. 이상하게 멀미가 덜했다. 창원에는 지하철이 없었고 부산에는 있었지만 자주 사용하던 편은 아니라서 이동할 일이 있을 때마다 지하철을 탔다. 도보 거리가 많아도, 몇 번을 환승하더라도 지하철만 탔다.



통학하던 친구가 가끔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즐겁다고 했을 때 수많은 의문이 피어올라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했다. 하지만 곧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재작년,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 가을에 화상 과외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출근해서 교육을 받다가 그 후에 재택으로 돌리는 방식이었는데 집에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였다. 버스에 익숙하지가 않은 데다 길치였기 때문에 처음 교육을 받은 일주일 동안은 거리를 돌며 헤맸었다.



익숙해지고 나니 가는데만 한 시간, 오는데만 한 시간이 걸려서 지쳐버렸다. 그 동네는 회사나 공사장이 더 많은 쪽이라서 근무가 마칠 때면 거리가 조용했었다. 시간이 늦어서 버스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날이면 친구와 작게 통화를 하면서 가기도 했고 쥐 죽은 듯이 잠을 자기도 했다.





환승 정거장은 여의도 한강공원이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계절에 홀로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지만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곳이어서 내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쁘지 않네. 매번 그랬다.          






종로에서 학원을 다녔던 여름 밤동안도 나는 이제껏 몰랐던 창밖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 서울 곳곳을 누비며 낮과 밤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게 유일한 낙이었다.







이제 어디에서도 그 둔탁한 흔들림에도 익숙해졌고 웬만큼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 멀미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가운 버스들까지 생겨버렸다. 누가 알았을까, 이토록 움직이는 고요함을 내가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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