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한중 Nov 20. 2020

'장'도 '인생'도 묵어야 제 맛?

'묵 = 먹(음식, 나이) = 오래' 


한국인의 밥상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飮食)이 있다면 ‘장'(醬, 간장ㆍ고추장ㆍ된장)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장’은 묵을수록 각각 그 고유의 맛이 우러날뿐더러, 음식 맛을 결정해 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은 ' 집' 탄생의 주역(主役)이었으며,   집 역시 옛날 어머니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지방마다 산과  그리고 바다에서 나는 재료에다 장으로 요리를 만들어 음식이 어머니의 손 맛으로 정착되, 오늘날 각양각색의 맛 집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맛 집’? 하면 좀 허름하거나, 전통방식이거나, 할머니 원조(元祖)로, 묵맛에다, 독특한 맛과 별미, 원기회복, 웰빙 음식일 거라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이 여행을 떠나서도 꼭 그 지방의 맛 집만을 검색해 찾아가는 습관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음식점 대부분이 맛 집이라고 홍보하다 보니, 어느 ‘소갈비 전문점’은 “방송에 단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는 대형 홍보물(입간판)을 식당 앞에 설치하였는데도 주말이나 연휴와 관계없이 손님이 제법 많이 찾는다.



또 다른 한 시골의 조그만 식당은 점심에는 소머리 국밥, 저녁에는 돼지찌개백반집이었는데 맛 집으로 소개된 이후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렬을 보면 정말 '맛'이 있어서 인지? 아니면 기다리는 맛(?)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심리가 참 묘하다는 걸 그곳을 지날 때마다 느끼곤 한다.   


조갑제 닷컴은 묵어야 제 맛인 ‘장’(醬)처럼, ‘인생’(人生)도 “나이가 묵을수록 녹슬지 말고 닳아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낡은 의자를 보았습니다. 한때는 근사한 모양이었겠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가죽도 좋았고, 고급 목재(木材)로 잘 짜진 의자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찢어지고, 금이 가고, 흉터가 나 있는 망가진 의자로 버려졌지만, 그 의자는 초라하거나 추하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닳아질 동안 의자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 거지요, 문득 누군가가 남긴 명언이 생각났습니다.


‘노인(老人)은 나이가 묵을수록 녹슬지 말고 닳아야 한다.’ 인간은 녹슬지 않고 닳아서 망가져야 합니다. 소임을 다하고 버려진 망가진 의자처럼 사는 것이 곧 성공적인 삶일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들고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열장에서 놀고 있는 골동품 같은 삶은 녹스는 삶이고, 낭비되는 삶이지요.」  


 인생의 묵은 맛은, “00도, 촌스러움의 미학” 서평에도 진하게 우러나온다.


「'밥은 묵고 댕기냐?' 생면부지의 낯선 이들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00도다. 촌(村) 마을 고샅(마을의 좁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 건네는 이런 물음은 그저 인사말로 끝내지 않는다.


난생처음 본 길손님 손목을 잡아끌어 기어이 툇마루에 상을 차려준다. 갯가에서 만나면 미역 줄기라도 손에 쥐어주고, 논밭 두렁에서 마주치면 호박 덩어리라도 안겨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장터에서도 논밭과 갯가에 쪼그리고 산등성이를 타고 기며 힘겹게 얻어온 물건을 팔아도 고된 몸공(-功, 몸으로 하는 일)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이렇듯 채소전, 곡물 전, 나물전, 어물전에 나서는 할머니들의 좌판에 조르라니 깔리는 것은 단순한 농산물, 해산물이 아닌 사라져 가는 인정과 어른들의 푸진(넉넉한)한 인심이 아직도 살아 있다.」  

   



고향의 “맛”은 어떨까? 필자 고향은 “간장게장과 우럭젓국, 게국지” 등 3가지가 유명한데 그곳에 가면 반드시 먹고 와야 하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전국의 미식가(美食家)들은 어느 곳을 말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간장게장’은,

앞바다 청정해역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5월에 잡은 알이 듬뿍 차 있는 암꽃게로 간장만을 사용해서 만들어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심하지 않아 이곳에서만 간장게장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며,



‘우럭젓국’은,

(鮑)를 떠서 소금 간한 우럭 살을 햇볕에 말렸다가 쌀뜨물에 우럭포, 무, 액젓, 대파, 다진 마늘, 미나리를 넣어 끓인 찌개로 뽀얀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진하고 담백한 맛이 천하일품이다.

 


‘게국지’는,

게 국에 담근 김치나, 우거지, 호박, 해산물을 넣고 끓여 환상적인 조화로 맛이 기막혀,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국물 한 방울까지 알뜰히 사용했던 조리법이 게국지 탄생의 일등 공신이었으며, 이 3가지 음식을 먹으면 장수(長)한다고 한다.   


  

'간장'은 오래 묵을수록 단맛과 감칠맛이 고, '된장'은 최소 3년은 묵어야 제 맛이 우러나며, '고추장'은 태양 볕에 오래도록 성숙시켜야 진짜 맛이 난다고 한다.


지만 맛 중의 맛은 [장 맛에다 어머니의 손 맛과 이야기 맛, 고향 맛, 사투리 맛, 인정(인심) 맛, 여행 맛]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담아낸 것이라야 진짜 참 맛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하니,


고향의 「장 맛」도 즐길고, 부모님도 찾아뵙고, 어머니의 「인생 맛」도 느낄 겸 향토음식 기행(紀行)을 계획해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도 큰 기쁨일 것이다. 모든 시름 다 잊고 “출발! 4계절이 온통 맛있는 고향 앞으로...”



작가의 이전글 운명을 사랑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