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운명(殞命, 죽음 또는 임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운명은 과연 아름다운 이별일까?
아직까지 우리나라 풍습(風習)은 운명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지만, 예측할 수 없기에 운명을 맞이하기 전에 삶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또한 행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스티브 잡스」 역시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국립 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는 “나의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을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고,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에 대한 결정입니다. 언젠가 맞이할 나의 삶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지난해 우리나라 총 사망자수는 29만 5110명으로 이 중 22만 4000여 명(76%)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삶의 질이 나아질수록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존엄사법’ 또는 ‘웰다잉(Well-Dying) 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2018년 2월)됨으로써 입법을 통해 내 죽음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에서 이제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그동안 법적ㆍ윤리적ㆍ종교적ㆍ의학적 문제들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 존엄사‘(인간다운 생의 마감, 자연스러운 죽음)나 ’ 안락사‘(고통 없는 생의 마감, 의도적인 죽음)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세 이상인 사람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意思)를 직접 문서로 작성해 두는 것으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가 있다. 다시 말해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경우,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지난 10월까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모두 74만 1천202명이라고 한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등록기관은 전국에 477곳(시ㆍ군ㆍ구 보건소)이 있으며,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전국에 297곳이 있다.
절차는 이렇다. 임종과정(수개월 내에 사망 예상 또는 사망 임박)에 있다고 판단한 19세 이상 환자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가 작성되었는지 확인한 후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존엄(안락) 사가 시행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콜롬비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미국(5개 주) 등 8개 국가에서도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임종 문화도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없다면 더 이상 연명치료를 계속하기보다는 존엄성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한 노인의 삶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치료효과 없이 목숨만 유지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과감히 중단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죽음이 삶에 답하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은 아주 평온하고 담담하게 “애초의 삶은 죽음과 함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자기 선택이 곧 존엄한 죽음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저는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며 임종을 맞이한다.
필자도 지난해 아내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아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제출하였다. 며칠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등록증(R19-******)이 배달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죽음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기에 그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한 일일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