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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Dec 01. 2020

'인간의 손길'은 기적이었다

13년 전 태안 해상 기름유출사고는 123만 명의 국민 손길로 회복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7년 12월 07일, 충청남도 만리포 해상(바다)에서 최악의 기름(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하였다. 엄청난 량의 기름이 순식간에 유조선(기름 운반선)에서 바다로 쏟아지는 대형사고였다.


유조선에서 원유(기름)가 바다로 뿜어져 나오는 모습


시간을 돌려, 2020년 12월에 사고가 발생하였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산으로 전국이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비상상황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방제(기름제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할 필요도 없고,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어리석은 생각은 떨쳐버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국의 123만 국민 "손길(인간띠)"이 이 엄청난 사고를 단 10여 개월 만에 사고 이전의 바다로 회복시켰다는 사실이다.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였지만, 해수욕장과 바닷가, 방파제, 산모퉁이, 갯바위마다 도움의 손길은 필요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은 결국 "기적"을 만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기름을 닦고 있는 모습




사고는, 평온하기만 했던 2007년 12월 07일 만리포 해상에 정박 중이던 원유운반선이 해상크레인의 충격을 받아 파손(구멍)되면서 다량의 기름이 청정바다로 쏟아지는 사고였다. 주민들은 망연자실!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기름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던 그날. 평생을 바다에다 삶의 모두를 걸고 살아온 부모ㆍ형제는 밀려오는 검은 기름을 보면서 아이들 학비가, 앞으로 생계가 우선 걱정이었다.


황금의 땅 낙토(樂土) 태안 앞바다가 14만 6,000톤급의 허베이스피리트호에 적재되어 있던 원유(방카 C유) 1만 2,547㎘가 바다로 유출되면서, 충청남도 남쪽으로는 천수만과 북쪽으론 가로림만까지 1,242㎞의 해안선을 삽시간에 삼켜버린 대한민국 최악해상 기름유출 사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리포항 방파제로 밀려오는 기름(원유)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오는 기름(원유)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하던 바로 그날 이른 아침, 나는 몽산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역한 기름 냄새(악취)로 현장에 접근하기조차 힘들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원유가 유출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차를 돌려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엄청난 량기름덩어리가 해안가 후미진 곳까지 밀려와 있었으며, 그것도 부족해 조류(潮流)를 따라 육지로 육지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날 원액의 기름덩어리를 목격하는 순간 "이 엄청난 량의 기름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민들은 수천 년 조상 대대로 가꾸고 보존해 온 바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절망만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바다에서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아빠, 엄마와 고사리 손의 초등학생 그리고 형, 누나, 동생 할 것 없이 양동이를 들고 밀려오는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언론보도를 보고 한 달음에 달려온 전국의 국민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기름을 수거하는 헌신적인 모습의 국민영웅들

  

인간띠를 이루어  기름을 수거하는 국민영웅들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 스면서까지 양동이를 나르는 모습의 국민은 물론이고, 수천ㆍ수만의 바다생물과 굴ㆍ바지락ㆍ전복양식장,  발이 묶여있는 어선, 기름범벅이 된 채 날개 한번 펴지 못하고 죽어가던 뿔논병아리(새)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울분이 솟구치기도 했지만, 전국에서 달려온 손길들과 함께 바다를 살려야겠다는 일념(一念)으로 세찬 눈보라와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견뎌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와 두통을 호소하면서도 모두가 하나 되어 기름을 나르고, 후미진 해안가 절벽이며, 바위며, 돌멩이 하나까지 달라붙은 기름때를 손길 손길로 닦고 또 닦기를 반복했다.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진해서 찾아온 국민, 진정한 봉사기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 아들ㆍ딸을 데리고 온 부모, 학업의 연장이라며 달려온 학생, 직장에 연가를 내고 단체로 참여한 직장인, 사랑의 밥 차ㆍ폐기물 운반차량을 몰고 온 국민,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라를 지키던 대한민국의 용사, 신혼부부, 몸이 불편한 장애인, 외국인, 종교단체, 부녀회 등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분들의 아름다운 동행은 헤일 수 없이 많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기름 범벅이 된  '굴' 양식시설물


해안가 돌 하나하나까지도 기름때를 닦아내는 모습

 

갯바위 닦기(기름제거)


바닷가 돌멩이 하나하나까지도 기름때를 닦아내는 모습




그분들의 덕분이었을까? 하늘까지 감동해서였을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일이,

123만 명의 국민 손길이 사고 발생 10개월 만에 '가능'으로 바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라"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나약했음을 인정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인간의 물결이 성난 자연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마침내 바다는 ‘새 생명의 바다’로 태어났고, "인간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시킨 감동적인 사례였다.


만리포 해수욕장(2020. 05월)


만리포 해수욕장(2020년 11월)




국내 유일의 '태안해안 국립공원' 곳곳은 주민들과 123만 국민영웅이 기름을 퍼 나르던 길이 되고, 다시 그 길은 해변길ㆍ솔향기길ㆍ바라길ㆍ태배길 등 둘레길로 조성되어 지금은 한해 1천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코스로 변모하였다.  

   

태안 앞바다에선 각종 수산물이 4계절 넘쳐나고, 만리포 해수욕장엔 유류피해 극복 기념관도 건립되어 영웅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착용했던 방제복,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어 많은 국민이 찾아오고 있다.


바다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며, 귀하게 여기고 깨끗이 사용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국민 모두에게 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기적을 만들어낸 국민답게, 또 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부디 풍요(豊饒)의 바다에서, 풍어(豊漁)만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그런 바다로 다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上 : 사고 前 / 下 : 사고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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