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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Apr 15. 2021

지친 마음 달래주는 '이팝나무'

5월에는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거닐며 이팝꽃 향기에 취해보면 어떨까?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세상의 모든 소식들도 사람들의 옷차림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 5월이면 4월의 벚꽃처럼 거리를 화사하게 수놓아줄 꽃나무가 있다. 어린이날을 전후한 못자리가 한창일 때 피기 시작하는 꽃 바로 “이팝"이다.



새하얀 꽃송이가 초록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다. 식량사정이 어려웠던 시절(보릿고개) 쌀알 모양의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쌀 나무'라 했다는 바로 그 나무다. 순백의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때면 사발에 소복이 쌓인 흰쌀밥처럼 보여 '이밥(멥쌀로 지은 밥) 나무' 또는 입하 때 핀다 하여 ‘입하 나무’라고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음이 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농사가 생업인 시절 사람들이 농경지 주변에 많이 심었다는 이 나무는 농사의 지표로, 꽃의 개화(開花) 정도를 보고 한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는데,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들고, 덜 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이 같은 풍속은 물이 많은 곳에서 이팝나무가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비 그치고 여름이 시작되려는지 이팝나무 꽃이 하얗고 소복하게 피었네. 제사를 지내지 않아 동네 잔칫집에나 다녀오시면 한두 숟갈 얻어먹었던 흰쌀밥. 꽁보리밥만 먹던 시절 도시락 밥 위에만 솔솔 뿌려주셨던 향긋한 맛 풍성한 꽃을 보며 올해는 풍년 들어 실컷 먹게 해 주시겠다던 어머니./ 이팝나무 꽃(이시향)』


시인의 말처럼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삶과 밀접한 나무였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름에는 건강한 푸른 잎으로 피로감을 달래주고 은은한 향기와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주며, 가을이면 꽃이 진 자리에 검은 보랏빛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사람들의 눈길을 또다시 사로잡는다.




이 뿐만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이 강해 잘 죽지 않고 굳건히 견디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 ‘이팝나무’와 비슷한 ‘조팝나무’가 있는데 언 듯 보면 혼돈하기 쉬워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팝나무는 벚꽃보다 먼저 하얀 꽃을 피우지만, 이팝 꽃보다 소담스러움은 한결 덜하며, 알갱이가 쌀알 같아 꽃이 피면 마치 튀긴 좁쌀같이 보여 조팝나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이 나무 역시 가난했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쌀에 대한 애환이 서려있는 나무라고 한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중국 등에서만 자라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옛날에는 산이나 시골 가로수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아파트 단지 내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 꽃이 필 무렵이면 사람들은 이팝나무 거리를 많이 찾는다.


서울만 해도 청계천과 충무로ㆍ대학로ㆍ올림픽대로 등에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다. 이밖에도 충남 예산(예당호), 인천 송도신도시, 대구 달성(교황리 군락지), 경기 용인(기흥호수공원), 전북 전주(이팝나무 철길)ㆍ진안(마령초등학교)ㆍ순창, 충북 진천ㆍ충주, 대전 유성, 경남 김해(5천 그루 군락지)ㆍ밀양(위양못), 경북 포항 등에 가로수 길로 조성되어 있으며, 외국인들은 이 나무를 보면 넘버원, 원더풀을 외치며 ‘눈꽃나무’, ‘흰 눈 나무’, ‘하얀 꽃나무’라며 신기해한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ㆍ관리되고 있는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는 수령이 450년으로 전남 순천의 평중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 ‘62년 12월 지정)를 비롯하여, 전북 고창과 진안(제183호, 제214호), 경남 김해(제185호, 307호 2곳)와 양산(제234호), 전남 광양 유당공원(제235호) 그리고 경북 포항 흥해 향교 이팝나무 군락(제561호, ‘20.12월 지정) 등 모두 8그루(곳)다.

 



한 가지 공통점은 이 나무들이 마을을 보호해 준다 하여 모두 신목(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오색 댕기를 매어 둔 나무)으로 여기며, 아주 긴 세월 동안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어 자연생태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문 및 사회생태까지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한다.


한편, 이팝나무의 가로수 식재가 늘어나다 보니 꽃가루를 날리는 주범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꽃의 구조를 보면 바람에 꽃가루를 밖으로 날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이팝나무의 개화 시기가 송화 가루나 버드나무 류 씨앗이 흩어져 퍼뜨리는 때와 일치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하니 착각하지 말아야겠다.


『이팝나무에 흰쌀이 주렁주렁 올해는 이밥에 고깃국, 입이 화들짝 호 강한 번 하려나 자갈논 모내기에 이팝나무 차진 쌀밥이 따스한 봄볕에 수북이 튀겨지고 있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앉아있다./ 이팝나무의 추억(김동석)』 이름에서부터 가난과 배고픔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팝나무. 이팝나무 꽃향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고, 꽃가루도 없는 [이팝나무 거리 조성]도 좋을 것 같다.


이팝나무 거리




예전에는 가로수 하면 플라타너스였는데 은행나무, 벚나무로 교체되다가 최근에는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사용하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벚꽃은 개화기간이 일주일 정도인 반면 이팝꽃은 보름 이상 지속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에 비해 관리가 쉽고 해풍이나 염기, 겨울철 염화칼슘에도 강한 나무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쌀 꽃, 눈꽃, 순백의 꽃, 5월의 벚꽃”으로 불리는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나뭇가지 위에 흰쌀밥을 담아놓은 밥그릇으로 연상하는 사람들이 요즘에도 있을까? 코로나 19 사태가 지속되고 있어 지금의 국면이 보릿고개와 같아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버겁다고 한다. 하지만 계절은 벌써 여름으로 숨 가쁘게 내달리고 있으니, 떠나는 봄을 아쉬워하지 말고, 5월에는 가족과 함께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거닐며 향기로운 이팝꽃 향기에 취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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