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한중 Oct 30. 2020

맛도, 기억도 잊을 수 없는 물고기 '명태'

서민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 준 효자 물고기


기억이 아름다운 음식일수록 사람들은 그 음식을 자주 찾게 된다. 바닷물고기 중에는 한류성 어종으로 조선시대 선조들이 즐겨먹었다는 “명태(明太)“가 맛도 기가막혀 서민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 준 생선으로 오랜 기간 기억되고 있다.


눈을 밝게 해 주며, 찌개를 끓여도 비린내가 나지 않아 머리부터 꼬리, 껍질부터 내장까지 다 먹을 수 있어 각 부위마다 쓰임새도 요긴하다.




명태요리는, 찌개(탕)ㆍ국ㆍ찜ㆍ조림ㆍ구이ㆍ무침ㆍ순대ㆍ맛살(‘게맛살’의 주된 원료)ㆍ어묵ㆍ식혜 등 다양하다.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 머리는 귀세미 젓, 아가미는 아가미(서거리) 젓으로, 간은 물고기 기름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눈알까지 구워서 술안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많게는 한 번에 약 100만 개의 알을 낳아 다산(多産)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로부터 제사나 고사, 전통혼례 등에도 빠지지 않는다. 새로 구입한 차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데에도, 새집 이사 들어갈 때나 정월대보름에는 액막이(厄, 앞으로 닥칠 나쁜 운을 미리 막는 일)로 용도가 다양해 아주 친근한 물고기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음식(생선)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리는 이름도 상태나 잡는 방법, 시기 등에 따라 제각각이다.


[ 상태에 따라 ]  생태(生太), 동태(凍太, 얼린 것/ 冬太, '겨울에 잡은 것'과 차이 ), 건태(乾太, 북어北魚), 황태(黃太, 얼렸다 녹였다를 3개월 이상 반복해서 말린 것), 백태(白太, 덕장이 너무 추워서 하얗게 변한 황태), 먹태(흑태 또는 찐태, 황태를 말리다 색이 검게 변한 것), 깡태(얼지 않고 말라버리는 바람에 딱딱해진 것), 짝태(한 달 동안만 천막을 치고 말린 것) , 낙태(落太, 덕장에서 건조할 때 땅에 떨어져 상품가치가 낮은 것), 난태(卵太, 산란 전에 알을 밴 상태에서 잡힌 것), 코다리(반건조), 파태(황태를 만들다 몸뚱이가 흩어져 제 모양을 잃은 것), 골태(속살이 부드럽지 않고 딱딱한 황태), 봉태(내장을 빼지 않고 통째로 만든 황태), 꺽태(산란하고 나서 잡힌 것), 왜태(倭太, 성체지만 크기가 작은 것), 무두태(건조 도중 머리가 떨어진 것), 코다리(반 건조시킨 것)로 불리며,


 [ 잡는 방법에 따라 ] 망태(網太, 그물로 잡은 것), 조태(釣太, 낚시로 잡은 것),


[ 잡는 시기에 따라 ]  춘태(봄에 잡은 것)ㆍ사태(4월에 잡는 것)ㆍ오태(5월에 잡는 것)추태(가을에 잡은 것)ㆍ동태(冬太, 겨울에 잡은 것),  막물태(늦봄 마지막에 잡은 것)


[ 잡는 장소에 따라 ] 원양태(원양어선이 잡은 것), 지방태(근해에서 잡은 것), 강태(江太, 강원도에서 잡은 것), 진태(진짜 동해안 명태), 간태(稈太, 강원도 간성 군), 왜태(倭太, 함경도 연안), 막물태(함경남도 봄철), 일태~이태~십이태(一太~十二太, 정월~십이월), 동지 받이(동지 전후)


[ 크기에 따라 ]  애태(새끼), 노가리(새끼 말린 것) 등 모두 합하면 예순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효능도 탁월해 ‘살’은 간을 보호하고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며 필수 아미노산과 노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비타민E와 토코페롤 성분이, ‘알과 내장’은 단백질이 적은 반면 칼슘ㆍ철분ㆍ인ㆍ비타민A가 풍부하고, ‘껍데기’는 콜라겐이 많아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는 물고기로도 알려져 있다.


숙취 또는 해장국에는 무기질 함량이 높은 ‘황태’보다 아미노산이 많은 ‘북어’가 알코올을 분해하는데 더 효과가 있다는 것쯤은 웬만한 애주가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간밤에 술 취해 늦게 귀가한 남편을 위해 아침 해장국을 끓이려고 방망이로 북어를 작신 두들겨 패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어느 가정에서나 있었던 추억의 한 장면이다. 어쩌면 어머니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북어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패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 대한 원망도 풀리고, 남편은 아침밥상에 북엇국을 받고 아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북어는 어쩌면 인간의 삶과 애환을 함께한 물고기였는지도 모른다.


노가리는 맥주 집 마른안주의 터줏대감으로 사람들이 노가리를 씹으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정말 절묘한 물고기인 것 같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흔하며 때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준 생(生)의 재료 명태, 밑바닥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잡아온 물고기였지만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물고기로 고마운 효자품종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만큼 우리처럼 명태를 많이 먹는 민족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흔하던 ‘명태’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모두 떠나고 없으며, 부족한 부분을 ‘고등어’가 대신 차지하고 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로 연간 27만 톤 이상 잡혔으나, 1970년대 5만 톤, 1980년대 15만 톤, 1990년대 1만 톤으로 급감하더니, 2000년대 들어서 1,000톤을 넘지 못하다가 2008년부터는 어획량이 전무하다.




오랜 기간 국민생선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무분별한 ‘남획과 기후온난화(바닷물 상승)’로 자기 몸에 맞는 서식환경을 찾아 자취를 감춰 버렸다고 한다.


정부는 고갈된 명태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2019년부터 우리나라 해역에서는 크기에 관계없이 포획은 물론 유통하는 행위를 연중(1월 1일~12월 31일)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요즘 식당이나 어시장의 명태는 모두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저 먼 북태평양(일본 오호츠크 해, 러시아 베링 해, 미국 북부 해안) 깊은 바닷속에서 잡았거나, 수입해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찌 되었건 명태는 우리나라(동해)와 일본, 러시아의 대표적인 어종이자,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잡히고 소비되는 생선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강원도 대진항과 거진항에 명태가 땔감처럼 쌓였던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손발이 시리도록 찬바람 부는 겨울이나, 뜨거운 한 여름에도 시장에 가면 꽁꽁 얼어붙은 동태 상자를 바닥에 내리쳐 떼어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명태는 냉동 창고에 오랫동안 저장해도 맛과 영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귀중한 식량으로 쌀처럼 비축해 두고 있으며, 멸치ㆍ고등어와 함께 한국인의 어류 소비량 1위를 차지하는 품종이기도 하다.




정부는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년 어린 명태를 방류하여 명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명태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와 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를 떠난 명태가 국민생선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도록 [명태 복원 프로젝트]가 부디 성공하길 바란다.


언제쯤 우리 해역에서 갓 잡은 싱싱한 명태로 끓인 얼큰하고 개운한 생태찌개를 후후 불어가며 다시 먹을 수 있을까? 명태 고유의 맛과 향을 국민께 한없이 선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시 오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코로나 19로 모두 지치고 힘든 이때 이름처럼 명태(明太)가 세상을 밝게 해주는 물고기로,  또 시원한 생태 국 한 그릇이  어려운 이웃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수입산 인들 어떠랴. ^-^



『‘명태’!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 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 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로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 양명문.』




이전 07화 너는 ‘광어ㆍ넙치’ / 나는 ‘도미ㆍ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