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동ㆍ서ㆍ남해 바다의 대표적인 물고기를 꼽으라면, 동해에 ‘명태’, 남해에 ‘멸치’가 있다면, 한반도 서해바다는 단연 ‘조기(참조기, 굴비)’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생선이자 어려웠던 시절 최고의 생계수단이요 효자 물고기, 백성의 물고기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자원 귀한 줄 모르고 그동안 남획과 서식환경 악화ㆍ자원감소 등 지금은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여 원인에 대한 치유가절실한 실정이다.
“조기”(助 도울 조, 氣 기운 기)는 뛰어난 맛과 영양이 풍부하여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물고기)이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생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이 발육이나, 허약한 몸에 좋고, 노인들의 입맛을 돋우고, 원기(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주며, 소화를 도와주는 고급 생선으로 그 영양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옛날 어른들은 쌀과 조기로 죽을 쑤어 어린이나 환자 영양식으로 사용했으며, 병환 중에는 조기 국물을 마시면 회복이 빠르다고 하여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훌륭한 조기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해바다에서는 조기 파시(波市, 바다 위에서 어선들이 여는 생선시장)가 성행하였을 정도로 많은 조기가 잡혔다.
회유성(回遊性) 어종으로 겨울에는 제주도 남서쪽과 동중국해(東中國海)에서 월동(12~다음 해 2월)을 한 후, 봄(3~4월)이 되면 서해로 북상하는데 산란을 하면서 추자도와 흑산도, 칠산도 앞바다를 거쳐 초여름(5~6월)에는 연평도 근해까지 도달하는데, 가을(10월 하순)이 되면 다시 남하하기 시작하여 겨울(11월 이후)쯤 되어 월동장에 이르는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영광굴비’는 조기가 북상할 때 어획한 싱싱하면서 알이 밴 큰 참조기만을 천일염에 섭간(물기가 없이 절이는 방법)을 하는 독특한 방법과 과정을 거치는데, 봄부터 여름까지 습도와 일조량 등 최적의 조건인 기후(영광 법성포)가 굴비의 탄생에 일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굴비”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우리말로 ‘비굴’을 거꾸로 하면 ‘굴비‘가 되지만, 굽히지 않는다는 뜻의 한자어 ‘굴비’(屈 굽힐 굴, 非 아닐 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說)과, 짚(요즘은 나일론 끈)으로 엮여 말라가는 조기의 허리가 ‘굽어있다.’하여 ’ 구비‘가 변해 굴비가 되었다는 설,
고려시대 영광으로 유배 온 한 선비가 해풍에 말린 굴비 맛을 보고 권력에 목매달았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진상하는 굴비에, 「더 이상 '비굴‘(卑 낮을 비, 屈 굽힐 굴)하게 살지 않겠다.」라고 적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설 등 다양하게 전해오고 있다.
‘굴비’는 본명이 ‘조기’로 “참조기를 소금에 약간 절여서 통째로 꼬들꼬들하게 말린 생선”을 말하는데, ‘천지어’(天知魚, 하늘의 물고기) 또는 ‘석수어’(石首魚, 머리에 단단한 뼈가 있는 물고기), ‘추수어’(追水魚, 산란철에 찾아오는 물고기) 등 다양하게 부르기도 한다.
또 조기의 머릿속에는 돌 2개가 들어있어 수평을 유지하니 '예'(禮, 예절)가 있고, 소금에 절여도 굽히지 않으니 '의'(義, 바르고)가 있고, 내장이 깨끗해서 '청'(淸, 맑고)하고, 비린 것 옆에는 가지 않아 '치'(恥, 부끄러움)를 안다고 했다.
가슴ㆍ배ㆍ뒷지느러미는 황금색이고, 등과 꼬리지느러미는 갈색이며, 눈 주위는 노랗고, 몸통 한가운데 있는 옆줄은 굵고 선명하다. 조기(굴비)는 비교적 격(格)이 높아 선물로생각을 했다가도 비싼 가격에 미음을 접을 때가 많다.
「분명 비린내에도 품계(品階, 등급)가 있다. 내 살점 뜯으며 생각하라. 살아서 ‘비굴’(卑屈) 하겠느냐? 죽어서 ‘굴비’(屈非) 하겠느냐?/ 굴비(복효근)」 여러 마리의 조기(助氣)가 새끼줄에 엮여 허리가 굽은 채로 해풍에 말라 가는 모습이 어쩌면 처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굴비로 다시 태어나면 그 어떠한 유혹에도 비굴한 인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고통받는 청년세대에게 굴비를 통해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짜디짠 소금(천일염)에 절여져 꾸덕꾸덕(표면이 마르거나 굳어진 상태) 말라가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굴비로 재탄생할 수 있듯, 비굴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바르게 하라는 강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엄원용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여러 마리 줄줄이 묶여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깡마른 몸뚱이에 희멀건 눈이 누런 마분지처럼 말라붙어 나를 노려본다. 어떤 녀석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슬그머니 가슴에 통증이 온다./ 굴비」어쩌면 이렇게 단 몇 문장으로 굴비의 정신(精神)을 전달하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건, 굴비(조기)를 비굴하지 않은 삶의 상징으로 한 결 같이 묘사(描寫)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 중에는 참조기 이외 값이 저렴하고, 맛도 있어 '조기'로 칭(稱, 일컫는)하는 [백조기(보구치)ㆍ수조기ㆍ부세ㆍ흑조기ㆍ반어]도 있으니 국민들이 함께 예뻐(이용) 해 주면 좋겠다. 이제 남은 과제는 '위기에 직면한 조기 어장을 어떻게 회복시켜 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느냐'다. 범국가적으로 자원평가와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결코 '비굴'하지 않은 삶의 물고기 [조기(굴비)], 비굴할 수도 없는조기의 울음소리(개구리울음소리와 비슷, '구... 구')를 서해바다에서 다시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값싼 가격에 굴비구이와 함께 굴비찌개(탕)랑, 굴비 조림ㆍ찜ㆍ전 등배 두드리면 맘껏 먹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