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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Dec 01. 2023

아내의 단상

고달펐던 삶 다 잊고 남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12월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정말 거세다.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지만, 모두가 겪는 인생 사인걸 어찌하겠는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세월이 흐르면 변하듯, 우리의 육체도 나이가 더해지면서 바뀌어 가는 건 자연의 이치인 걸 거스를 방법은 없다.




586세대가 그러듯 국민소득 100불도 되지 않던 엄혹한 시대에 태어나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다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지만, 보릿고개의 힘들었던 삶, 흙먼지 뒤집어쓰며 뛰어놀던 동네 어귀, 요즘엔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많지만,


그 시절만 해도 다리에서 피가 나면 그것을 멈추게 하겠다고 흙으로 덮는 어리석음을 보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 그리고 식구는 왜 그리도 많았는지? 보리밥만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으련만,


1일 3식 끼니를 때우려니 어머니의 지혜가 ‘한솥 가득 부은 물에 찬밥 덩어리를 넣고 불린 일명 밥 숭늉’을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게 먹으며 보냈던 시절,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 직장 잡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아이 둘에 가정을 이룬지 40년이다.    


 

희끗희끗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방 귀퉁이 사진 속 면사포 쓴 아내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밥 짓기도 힘들었지만, 반찬 한 가지 제대로 만들 줄 몰라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만들고, 내일 아침엔 무엇으로 상차림을 하여야 하나?’ 걱정에 밤잠을 설친 적이 얼마이고, 눈물을 흘린 날들이 얼마인지 당신은 알고 있느냐”라며 물을 땐 할 말을 잊는다.


십 수년간 앓고 있는 고혈압과 고혈당ㆍ고지혈 등 3고 약 복용으로 약해진 면역력 탓인지 회복 40일 만에 2번째로 엄습한 코로나를 겪은 후유증이 요즘엔 더욱 심한 것 같다. 또 다른 병의 유발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혹시 ‘시집살이 탓은 아닐까?’ 하는 먼 옛날의 생각까지 들어 아내에 대한 밀려오는 미안함은 되돌릴 길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다 지나간 옛일인걸. 시부모 모시고 힘든 시집살이에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 둘 돌봄 등 어려웠던 지난 세월만 되새길 뿐이다.

    



‘왜 그때는 그리도 지혜롭지 못했는지?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마음에만 담으며 살았는지‘라며 푸념 반, 추억 반, 눈물 반 이야기한다. ‘어머 이 탁자, 이 그릇 참 예쁘다’ ‘이 음식 맛있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건데,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인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었는데’ ‘이 음식점은 모두 내 스타일만 있네’라며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아내를 볼 때면 더 후회가 크다.


이토록 감성에 젖는 아내의 마음을 왜 좀 더 젊었을 적에는 헤아리지 못했을까? 반성도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 늦었지만 은퇴 후부터는 ‘하루하루를 아내와 동고동락하면서 아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겠다’ 마음먹고 가정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아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 단상1 ] 아내의 마음  

   

“어머! 이 꽃?

 내가 좋아하는 꽃인데 예쁘게 피었네?

 이 접시? 갖고 싶었는데 이곳에 있네?

 이 식당 지나다니면서 한 번 와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모두 내 스타일이네?


 당신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이곳에 가자고 했을까?”     

 아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예뻐하는 것 같다

 “고마워요. 당신!”


 즐거워하는 표정과 흰 머리에다 휑한 머리숱이

 오버 랩 되어 마음이 내려앉는다

 젊었을 때 저토록 즐거워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더라면

 지금 같은 후회스러움은 없었을 텐데…  

   


 

[ 단상2 ] 아내의 투정     


어느 날

아내가 한 말이 기억이 새롭다.

“당신 태어나서 부모 형제와 생활한 기간보다,

우리가 부부로 연을 맺어 살아온 기간이 훨씬 길다는 거 알아?“

되돌아보니 26살에 결혼해 40년 차를 맞았으니 맞는 말이다


아이 둘에다

시부모와 남편에 시동생 뒷바라지하며 지내 온 세월 탓인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아내는 20여 년 가까운 세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복용하며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약봉지를 꺼내 식탁에 놓아야 한다

나의 몫이다.

가끔 아내가

“오늘 약을 먹었나?”라며 묻는다

그럴 때면 약 챙기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어쩌다 깜빡 잊기라도 하면

아내는  

“사랑이 식었네? 내가 벌써 당신 마음에서 떠났어?”라며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린다.

그럴 때면

아내가 더욱 사랑스럽다.      




[ 단상3 ] 잊고 싶은 추억?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가 갑자기

‘고사리만 보면 시어머니한테 혼난 생각이 나

보기도 싫고, 먹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집와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가 외출하면서    

“고사리를 삶아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건져 놓아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깜~빡 잊고

삶은 고사리를 찬물에 그대로 담가놓은 채

시어머니 눈에 띄어

‘눈물 나게 혼났던 기억’이 고사리를 마주할 때마다 떠오른다고 한다.   

  



[ 단상4 ] 아픔을 간직한 추억?     


어느 겨울날

가족들이 입던 옷을 한가득 머리에 이고는

시어머니 따라 동네 인근 우물(그때는 ‘포강’이라고 불렀음)로 빨래를 갔는데


차가운 물에 손 시려운 것도 잊고

요령 없이 힘만 들여 빨랫감을 비비다 보니

왼손등이 피멍이 들더니 급기야 붉은 피가 흐르는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뿐이랴

‘시집살이로 말하면 석 달 열흘도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옛날 일 자꾸 떠올리면 치매 위험이 높다고 하니 그만해야겠다’라며 또, 눈물을 글썽인다.


지나온 삶이 그만큼 힘든 삶이었다는 것이다.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것 같아 가엽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내임을 알 것 같다.


가을의 끝자락 화려한 단풍이 낙엽 되어 떨어지는 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진정 아름답고, 빛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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