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꿈이었구나."
선명해서 잔상이 더욱더 남는 그런 아련한 꿈. 주현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3일 만에 출근.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렀다.
어떻게 쉬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3일의 휴식이 무색하게 주현은 익숙하게 출근 준비를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겉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탄 주현은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기로 했으니까."
**
"오 주사님 푹 쉬셨어요?"
주현을 발견한 아현이 반가운지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다른 동료들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잘 쉬었어요."
주현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지만 어딘가에 그늘이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자리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자리에 서자 반가움이 배로 커졌다.
컴퓨터와 쓰던 볼펜과 달력 각종 사무용품 그대로였다. 며칠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서 컴퓨터를 켰다.
"왔어?"
아침 커피를 탕비실에서 타온 지우가 반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주사님. 안녕하세요."
주현의 상태를 스캔한 지우가 옆자리에 앉았다. 예전보다 혈색이 돌고 활기가 넘쳐 보이는 주현의 모습에 지우는 안심한 눈치였다.
"잘 쉬었니? 잘 쉰 거 같네."
"네네 주사님 덕분에 잘 쉬었어요."
두 사람만 아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두 사람이었다. 어느새 생각보다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럼 3일 동안 대직한거 얘기해 줄게."
"네네! 잠시만요."
지우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주현은 주의 깊게 적으면서 들었다.
"김윤지 씨는 이런 상황이고...... 손하준 씨라고 새로 이번에 자격책정된 사람인데. 그리고......."
"그럼 오늘 출장 갈 곳은........"
"위쪽부터 해서 이쪽으로 돌자."
"네"
서로 익숙한 리듬대로 대화를 이어갔다. 며칠 사이의 공백은 없던 것처럼.
**
얼마나 지났을까.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주현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제2의 김하율 씨와 주아람 씨를 만들지 않기 위해. 민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대상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침마다 걱정에 가득했던 이전에 출근길과 다르게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주현 씨 이제 괜찮은 거 같지?"
"네네. 괜찮은 것 같아요."
지우와 팀장님은 그 사건 이후 주현을 예의주시하면 걱정하곤 했지만, 이제는 주현을 믿어줄 수 있었다. 가끔가다 야근하는 주현에게 지우가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야근 그만하라니까."
지우가 퇴근 준비를 하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도 돈 벌어야죠."
주현이 기지개를 켜며 지우를 보았다.
"으휴. 일찍 가."
"네 주사님."
지우도 예전처럼 주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업무는 늘 그렇듯이 바빴고, 수급자들은 이상하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날 정도였다.
사람들은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임에도. 이상하게 수급자의 길로 빠져들었다. 걔 중에는 탈수급하여 자활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제거 대상자도 많았다.
그래도 주현은 다른 공무원들에 비하면 제거 대상자가 적은 편이었다. 주현의 노력이 꽤나 많이 작용한 덕분이겠지.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파트너인 지우는 알고 있었다.
"주사님 임윤정 씨요. 드디어 취업에 성공하셨대요."
"다행이네. 열심히 하셨는데."
매 순간순간마다 자신의 일처럼 그렇게 기뻐했으니까.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회의적이던 지우마저도 어쩌면 주현에게 영향을 받아 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현 덕분에 웃음이 늘어가기도 했다.
**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현은 더욱더 단단해져 갔고, 조금씩 익숙해졌으며, 자신이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 민아의 이름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뿐 서서히 먼 곳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여느 일상 중에 하루였다.
"생각보다 관련 대상자 수가 많아."
지우가 태블릿을 보면서 말했다. 주현이 운전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면서 물었다.
"정부에서 수급자 기준 변경한다고 하던데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수가 확 늘었네."
지우가 혀를 끌끌 차며 스크롤을 내리며 말했다.
"주현아 너 좋아하는 야근 많이 해야겠다."
"주사님 저 야근 안 좋아해요."
지우의 농담에 주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벌 수 있겠네요."
목적지 입력을 끝내자 자율주행차량에 알림이 울리며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났다. 주현은 의자에 기대어 피곤 한 지 눈을 잠시 감았다.
"너는 집에 가서 돈도 안 쓰고, 잠도 안 자고 거의 차에서만 자고. 여기 동에서만 살 거면 여기다가 전입신고 해."
피곤에 절은 주현을 보며 지우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그럴까요? 솔직히 집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사는 거 같긴 해요."
주현도 내공이 생겼는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워커홀릭인 애는 처음 봤다. 아현주사 봐. 항상 칼퇴하잖아."
"대단하시긴 해요. 일처리가 빠르신가 봐요."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했다.
흙먼지가 일었다. 늦가을은 서늘한 공기와 6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있긴 했지만, 부족했다. 사람들도 거의 오다니지 않는 거리를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어수선한 수급자 집단 거주촌을 지나 포장된 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 하늘동 행정복지센터가 있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다들 퇴근했는지 사무실의 불은 꺼져있었다. 지우와 주현은 불을 켜고 각자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그래도 주사님 오늘은 주사님이 계셔서 외롭지는 않겠어요."
주현이 꺼진 모니터를 켜면서 말했다.
"오늘 몇 시까지 하다 갈 거야?"
"일단 10시까지 생각하고 있긴 해요."
"그럼 내가 저녁 사 올게."
"아니에요. 같이 가요."
"아냐. 다녀올게."
지우는 자리에 앉더니 핸드폰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주현은 같이 나가려고 했지만 지우의 완강한 거부에 그저 받아 드릴 뿐이었다.
"맨날 너 먹는 걸로 산다."
"같이 가요. 주사님."
"아냐 갔다 올 게 있어."
"아니..."
"있으라면 있어."
지우는 주현을 앉혀놓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주현은 어쩔 수 없이 지우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모니터를 켰다. 그새 제거자 명단이 업데이트되어있었다. 아까 피곤해서 차에서 눈을 감고 있던 탓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지우에게 들어서 그런지 정말 지난번에 두 배였다. 일단 명단을 스크롤을 내리며 눈으로 읽었다.
익숙한 패턴, 아무 감정도 없는 누군지도 모를 이름들이 지나갔다. 그 순간 스크롤이 내리던 손이 멈췄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어?"
주현은 다시 스크롤을 올렸다. 초조함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익숙함. 아닐 수도 있을 텐데 느껴지는 기시감. 한 줄, 한 줄 위로 올라가던 그 화면이 특정 지점에서 멈춰 섰다.
한 곳에서 그렇게 멈춰버렸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민아 (조사대상자)"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가 하얘지면서 손끝이 서늘해졌다. 무거운 무언가가 가슴을 꾹 누르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잠시 기억 속 깊이 묻어뒀던 그 이름이. 주현의 앞에 놓여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형태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던 순간에서 다시금.
"네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가야지"
그 순간 잊고 있었던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주현의 손이 떨렸다.
전산 화면의 이름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주현의 하루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