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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25. 2021

독일 마트 장보기 챌린지

독일어로 고기 사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독일에 처음 왔을 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하는데 직원이 '영수증 줄까요?'라고 묻는걸 못 알아들었다. 다시 들었는데도 모르겠어서 그냥 '아니오'라고 답했다. 영수증을 안주냐고 물었더니 '안 한다고 했잖아요'라고 해서 무척 당황. '죄송해요. 잘못 알아들었어요. 영수증 좀 주실래요?' 했더니, 내 앞의 아저씨 것을 줬다. 나는 생강 따위 사지 않았지만 그냥 조용히 받아서 돌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말고도 영수증을 뜻하는 단어가 또 있구나 싶어서 한국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Kassenbon, Kassenzettel, Beleg 등등 외워도 한 동안 이 단어들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독일어를 배운다고 배웠는데도, 역시 책으로만 배운 것은 실 생활에서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후 한 달쯤 지나서 새로운 마트를 탐방해보기로 결심했다. 매일 REWE(레베)만 가다가 다른 마트 체인인 EDEKA(에데카)에 가 보기로. 늘 1kg 팔아서 못 사던 당근을 낱개로 팔고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발걸음이 팔랑팔랑 가볍다. 한국과 좀 다르긴 하지만 부추를 발견하고, 부추전을 해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신났는데, 밀가루(Weizenmehl)를 사려다가 난관에 부딪쳤다. (부침가루로 하면 좋지만 한 발 양보해서 밀가루로 타협) 한국에 있을 때는 강력분, 박력분이라고 적혀있고, 포장지에 쿠키나 식빵이 그려져 있어서 쉽게 구분했었는데, 독일의 밀가루에는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있다. 1200부터 1150, 1050, 650, 500, 450까지 점점 내려오는데, 높은 게 강력분인지 박력분인지 통 모르겠다. 저 숫자가 무게일까? 입자의 크기일까? 설상가상으로 포장지에는 그냥 '빵'들이 그려져 있다. 대체 저 빵 중 어떤 것이 좀 더 쫀득쫀득한 건지 알 수 없어서 밀가루 사는 것을 포기했다. 다음에 공부하고 와야지.


숫자가 낮은 게 박력분. Dinkel Mehl은 스펠트 밀가루고 Roggen Mehl은 호밀이다.


 그다음 주에는 무화과 4개를 샀는데, 한참 뒤 영수증을 다시 봤더니 무려 개당 0.99€였다. 이 보세요 무화과씨, 그 정도 퀄리티는 아니잖아요. 할인상품이라고 떡하니 붙이고 있더니만 가격이 kg단위가 아니라서 괜히 속은 기분이다. 자세히 안 살펴본 내 탓이오. 그 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무화과는 터키 상점에서 사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독일 마트 장보기의 최고봉은 '고기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어로 고기의 부위와 원하는 양과 자르는 방법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야 그냥 "불고기 하려는데 고기 추천 좀 해주세요"라고 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먼저 불고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고기 부위를 파악하고, 독일어로 이름이 뭔지 찾아본 후, 원하는 형태로 썰어달라고 설명해야 한다. 불고기용으로 얇게 썰어달라고 하면 직원분이 의아해하기 십상. 어쨌든 두근대는 마음으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쉬운 것부터 도전! 스테이크 용으로 추천을 해달라고 하니, 2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당최 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비싼 거지.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에이징 된 우둔살로 판명되었고, 엄청 부드러워서 맛있게 잘 먹었다.


 아직도 여전히 고기 사기는 두근거리지만, 핸드폰에 부위별 독일어를 띄워놓고 꿋꿋하게 주문을 한다. 고기 산적을 만들 우둔살을 사기도 하고, 소갈비를 사서 간장 소스에 조려 먹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안심을 사볼까. 슬슬 봄이 오는 것 같으니, 집에 오는 길에 노란 튤립도 한 다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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