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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에서 공황장애를 얻고 숲으로 도망쳤다

by 조하나




나는 지금, 충청남도의 깊고 한적한 숲 속 마을에 산다. 발코니 창을 열면, 밤새 이슬을 머금은 흙과 풀이 내쉬는 비릿한 생명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서울의 그 어떤 향수도 이보다 더 진실한 향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그 화려한 서울을, 꿈결 같던 태국의 바다를 등지고 왜 이곳에 둥지를 틀었느냐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부러뜨린 하이힐 굽과 소금기에 절어버린 영혼의 행적을 되짚어 보는, 조금 긴 여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서울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패션지 에디터의 명함으로 위태롭게 버티던 도시였다. 나는 수많은 뮤지션과 배우, 예술가들을 사람들이 추앙하고 찬양하도록 부추기면서도,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면서도, 정작 내 삶의 가치는 제대로 매기지 못했다. 얼굴에 쥐가 날 지경으로 영혼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 회색 빌딩 숲에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나의 도피처는 태국 꼬따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는 깊고 푸른 바닷속이었다.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어,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세상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 부르는 그 섬에서 말 그대로 섬처럼 혼자서, 애초에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가진 것을 하나씩 버리며 살았다. 이따금 한국에 들러 만난 친구들 중 몇몇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언제나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부러워”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세상에 고요히 맞선 그들의 성실함과 인내심이 더 부럽다고, 존경을 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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