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lks>에서 엠마 스톤은 “오랫동안 나는 예민함이 저주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배우가 되어 그 예민함의 힘을 아름답게 발현하기 전까지, 그녀에게 예민함은 늘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대중에 나서 떳떳하게 말하게 되기까지 숱한 자기기만과 자기혐오로 괴로워했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나 역시, 지극히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어른들에게 나의 예민함은 까다롭고 피곤한 골칫덩어리였다.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나는 늘 거부당했다. 그래서 십 대와 이십 대엔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나의 예민함을 없애려 애썼다. 내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고분고분하게,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언제나 또래 집단과 사회 집단에 둘러싸여 군중 속에 나를 가린 채, 아무런 색깔도 찾지 못하고 회색으로 거무튀튀하게 지냈다.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는 온통 나를 둘러싼 세상과 타인을 살피는 시간이었다.
삼십 대가 지나고부터 그제야 세상과 타인보다 그 안의 내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 그대로, 더 이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가시를 삐죽 세우고 몸을 한껏 웅크린 고슴도치였던 나는 살아갈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야.”
먼저 나부터, 변치 않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전히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싶고 부모와 친구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한 부분은 이를 뜯어말렸지만, 또 다른 나의 한 부분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제야 나는 조금 용감해지고, 또 조금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후, 잡지사 에디터로 수많은 아티스트를 만나 인터뷰하며 나의 예민함을 녹여냈고,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 사이를 방황하다 깨달은 자기 신뢰를 나만의 이야기와 문체로 풀어낸 에세이 <서울에서 도망칠 용기>를 출간했다. 그리고 마흔을 넘긴 나는, 또 다른 예민한 당신에게 주저 없이 말한다. 예민함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고.
나의 예민함의 기원
‘예민하다(銳敏하다)’는 말은 본래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는, 천성이 슬기롭고 총명하다는 뜻이다. 예민한 사람은 어떤 경험이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깊게 처리하고, 또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더 크게 반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초예민자(Highly Sensitive Person, HSP)’라고 부른다.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Aron) 박사에 의해 정립된 이 개념은, HSP가 질병이나 장애가 아닌, 인구의 약 15~20%가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적인 기질적 특성임을 말한다. 이 특성의 핵심은 ‘감각 처리 민감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 SPS)’이 높다는 것인데,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깊은 정보 처리(Depth of Processing): 정보를 더 깊고 철저하게 처리하며,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차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숙고한다.
●과도한 자극에 쉽게 압도됨(Overstimulation): 시끄러운 소리, 강한 냄새, 밝은 빛, 많은 사람들 등 외부 자극에 쉽게 압도되고 피로감을 느낀다.
●강한 감정 반응과 높은 공감 능력(Emotional Reactivity & Empathy):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을 더 강렬하게 느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감지하고 깊이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미묘한 자극 감지(Sensing the Subtle):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환경의 미묘한 디테일이나 분위기 변화를 잘 감지한다.
이러한 기질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의 이야기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민함은 선천적으로 물려받기도, 후천적으로 발달하기도 한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험악한 시집살이를 했다. 장남인 아빠로부터 대를 이을 ‘아들’ 대신 딸이 나올 것이란 걸 알았던 할머니는 이를 무척이나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그 모든 감정의 배설은 엄마에게 쏟아졌다. 아빠가 아동기에 경험했던 정서적인 상처와 무시, 폭력, 무관심으로 깊어진 예민함의 기질 역시 나에게 이어졌다.
나 역시 태어나 자라며 대대로 물려온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었고,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젊은 엄마 아빠의 다툼과 폭력 속에서 늘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나 눈치를 봤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우리 집의 불행의 근원은 나 자신’이라 생각하며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굳어졌다. 자존감은 바닥이었지만, 자존심은 기괴하게 높았다. 어린 시절, 스스로를 방어하는 유일한 기재가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예민하지 않으려야 예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집안의 가장이라도 되는 듯 자기 전 가스불을 두 번, 세 번 점검하고, 현관문은 잘 잠겼는지, 다음 날 학교 준비물을 잘 챙겼는지 등을 수시로 확인하며 강박장애를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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