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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경외감, 신성한 전율 앞에서

3부. 심연의 가르침, 존재의 재발견

by 조하나



인간의 언어가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멕시코 정글 속 세노테 앙헬리타(Angelita), 그 ‘작은 천사’라는 이름의 심연으로 하강할 때가 바로 그러했다. 수면을 뚫고 들어간 다이버의 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풍경과 마주하게 되는 곳.


수심 30미터 지점에서 우리는 지구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과 조우한다. 바닥에 가라앉은 황화수소 층이 밀도 차이로 인해 마치 구름처럼, 안개 낀 강처럼 동굴 전체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기이한 구름의 경계선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위는 우리가 알던 물의 세계, 아래는 앙상한 고목들이 유령처럼 서 있는 신화 속의 세계. 그 경계를 넘어서는 찰나, ‘아름답다’나 ‘경이롭다’ 같은 단어들은 힘을 잃고 먼지처럼 흩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침묵 속에, 다른 차원의 행성에 불시착한 탐사선처럼 부유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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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CAM 장치_20250503_231109.718.jpg ⓒ 조하나




이것이 바로 ‘경외(Awe)’의 시작이다. 그것은 감정이기에 앞서 나의 모든 감각과 사유 체계를 정지시키는 압도적인 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이 현상은 우리에게 ‘우주적 관점’이라는 특별한 렌즈를 선물한다. 수만 년에 걸쳐 물이 조각한 석회암 벽과 눈앞의 광활한 푸른 공간 앞에 서면, 서울의 복잡한 교차로에서 나를 괴롭히던 번뇌와 조급증은 아득히 멀어진다. 나의 키, 나의 나이, 나의 이름, 나의 출신, 나의 고통 모두가 이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서는 한 점의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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