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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기력한 진짜 이유|집단 트라우마, 상처, 치유

by 조하나





한국의 대형 사회적 참사일은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노란색, 보라색만 봐도, 바다에 떠다니는 배만 봐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도,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건 어쩌면 그저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년 4월이면, 내 마음은 바다가 된다. 지난 10년 동안 매일 같이 바다에 뛰어들며 살았던 나는 바닷속이 얼마나 차가운지, 무서운지 잘 안다. 슬픔도 그리움도 애통함도 억울함도 모두 바다에 묻는다.


2014년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나는 다니던 잡지사의 출장으로 발리에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잠시 튼 TV에서 고정된 외신 뉴스 채널에 한국의 페리가 침몰됐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시꺼먼 바다에 배가 반쯤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봤다. 얼른 한국 뉴스 채널을 찾아보니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떴다.


나는 마음을 놓고 식사 일정에 참여했다. 한국의 신문, 잡지 기자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현지 식당 정중앙에 있던 커다란 스크린에 아까 본 그 배가 나왔다. ‘전원 구조’ 뉴스는 오보였고, 현재 저 배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갇혀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보수 언론을 대표한다는 기자 아저씨들은 소주를 찾았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식사를 이어갔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한 기괴한 장면이었다.


안산은 내가 살던 도시와 가까웠고, 나는 친구들과 단원고 합동분향소로 향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영정 사진 속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하나, 하나 속으로 외자 그들은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이후,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큰 참사였다.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 JTBC로 이직하며 신이 났던 내 친구는 세월호 탐사 보도로 팽목항에서 몇 달을 보냈다. 그 친구를 매일같이 뉴스에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너, 오늘 뉴스, 멋지던데” 하며 장난을 쳤을 텐데 매일 같이 팽목항에서 마이크를 든 그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그는 스스로 마음을 갉아먹고 있던 것이다.


참사, 그 자체도 고통이지만, 이후 대응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책임지지 않는 비겁한 어른들, 해운 회사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커넥션, 조난자를 구하지 않고 상공만 돌던 헬기들에 사이비 종교까지 거론됐지만, 모든 정보는 은폐됐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가만히 있으라’라는 선내 방송의 지시를 착한 아이들은 너무 잘 따랐다. 당연히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하러 와줄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당연히’는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은 더 미어졌을 것이다. 제발 내 아이가 왜, 어떻게 희생당했는지 진상이라도 규명해 달라는 유족들은 생업을 저버리고 국회로, 청와대로, 경찰서로 뛰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인이 되어 무릎을 꿇었다.


피해자가 무릎을 꿇는 약자가 되자 악마들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경주나 갈 것이지, 왜 굳이 제주도를 간다고 배를 타서 이 사단을 일으키느냐”라고 한 목사가 말했다.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하는 유족들 앞에 대학생들이 모여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온라인에서 숨어서만 활동한다는 ‘일베’의 실체를, 아니 악마의 얼굴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온 국민이 한 날, 한 시에 수백 명의 죽음을 실시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기억은 대한민국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속수무책의 목격자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참사 이후 드러난 내 이웃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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